
눈은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그래서 아스펜의 밤은 언제나 낮보다 더 또렷하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눈송이, 숨이 차오르는 리듬,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움직임. 2026년 1월 31일, 몽클레르 그레노블은 그 고요한 긴장 위의 아스펜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펼쳤다. 특별한 런웨이는 없었다. 산 중턱이 곧 무대였고, 밤하늘의 별빛은 연출이었다. 아스펜은 산을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다. 산과 함께 살아온 도시다. 1950년대 이후 이곳은 스키 선수들의 목적지를 넘어 작가와 예술가, 건축가, 할리우드 아이콘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장소였다. 스포츠와 문화, 기능과 태도가 같은 풍경 안에서 공존해 온 시간. 산에서 출발해 기능과 스타일을 동시에 보여 준 몽클레르 그레노블의 궤적과 이 도시는 묘하게 닮았다.

이번 쇼는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이틀간 이어진 경험의 일부다. 낮 동안 스키와 스노보드, 스노슈잉으로 아스펜을 느낀 후 밤이 되자 다시 헬멧을 쓰고 스노모빌에 올랐다. 숲 속을 가로지르는 어둠 위로 알파인 숲을 형상화한 라이트 프로젝션이 겹치고, 그 빛 사이로 모델들이 나타났다. 지형에 맞춰 설계된 옷은 눈 위를 걷고, 미끄러지고, 가로질렀다. 자연과 기술, 실제와 연출은 굳이 구분되지 않았다. 몽클레르 그레노블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브랜드의 시작을 분명히 기억하면서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이번 시즌 콜로라도의 광활한 대자연과 1950년대 미국 특유의 정서가 만났다. 퍼포먼스를 전제로 한 구조 위에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기능은 더 이상 숨길 요소가 아니었다.

웅장한 무대 장치가 된 아스펜의 나뭇잎 모티브는 컬렉션 전반을 잇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프린트와 퀼팅, 입체적인 니트웨어, 자수, 레이저 컷 패턴, 자카르를 통해 옷을 그 배경이 되는 자연에 연결한다. 변화하는 산의 빛과 눈의 질감에서 가져온 컬러 팔레트는 차분하면서도 깊고, 왁스드 코튼 소재는 설원 위에서의 실용성을 전제로 한다. 그 위에 더해진 플로럴 모티브와 지도 그래픽은 극한의 환경을 위한 옷에 의외의 서정성을 불어넣는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1950년대 미국 패션을 따른다. 허리를 강조한 형태, 둥글게 부풀린 볼륨은 클래식한 인상을 주지만, 다운 퀼팅과 테크니컬 구조를 통해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정리됐다. 로덴과 트위드 같은 전통적인 알파인 소재는 현대적인 테일러링과 만나고, 칼라와 팬츠 포켓에 더해진 섬세한 플로럴 자수는 기능성과 미학이 분리되지 않던 산악 복식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또 카우보이모자, 요크선, 프린지 등 서부 정신을 접목한 새로운 퍼포먼스를 강조하기도. 하이퍼포먼스 스키 및 스노보드 기어는 이번 컬렉션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기능성을 갖춘 구조는 실제 산악 지형에서의 움직임을 전제로 설계됐고, 스노보드 선수 숀 화이트가 이끄는 화이트스페이스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스노보드까지 공개됐다. 퍼포먼스 소재 위에 더해진 장식과 그래픽은 보호를 위한 장비가 곧 스타일이 되는 순간을 보여 준다.

그 광활한 설원 위에는 앰배서더 구스 켄워시, 숀 화이트를 비롯한 선수들과 케빈 코스트너, 올랜도 블룸, 에이드리언 브로디, 뱅상 카셀, 그리고 데님 슈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니가 함께했다. 쇼가 끝난 뒤에도 달빛으로 물든 로키산맥은 그대로였고, 밤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 위를 지나간 옷과 움직임은 오래도록 눈 위에 남는다. 몽클레르 그레노블이 보여 준 것은 컬렉션 그 이상, 아스펜을 중심으로 완성된 하나의 태도, 그리고 그 태도로 향하는 영웅들의 모습이었다.
text BANG
art GEE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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