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한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솔직히, 다시 아이가 되고 싶다. 현실 회피라고 해도 할 말 없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품는다고 뭐라 한다면, 이 세상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라며 괜히 반항하고 싶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예민하다. 거칠고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안전한 도피처는 때 묻지 않은 과거의 무구함. 동심은 현재의 불안을 감싸는 세련된 갑옷이다.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가 보다. 몇 년 전부터 패션 하우스는 집단적 유년 회귀 조짐을 스멀스멀 보이더니 2025년 봄/여름 컬렉션에 이르러 알록달록 귀여움이 패션계를 장악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듯 고고해 보이는 고매한 패션 피플도 다 사람이구나’ 괜히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키즈 브랜드 쁘띠바또와 손잡은 미우미우, 만화책 속 장면을 컬렉션에 녹인 플로렌티나 라이트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바이올렛이 떠오르는 부푼 실루엣을 선보인 꼼데가르송까지. 그중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사람은 마티유 블라지. 그가 끝으로 진두지휘한 보테가 베네타의 2025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는 만인의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을 상기한다. 우리 모두, 그 무엇보다 어리고 여리고 귀여운 어린 시절을 지나 이렇게 큰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 제임스 블레이크의 ‘When We’re Older’가 쇼의 포문을 열었고, 프런트 로의 동물 모양 빈백에 앉은 트래비스 스콧은 연신 입을 틀어막으며 감탄하거나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슈퍼스타 스콧과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런 것. 어떤 무해한 동심에 무장해제되고 마는 것. 모두의 기억은 다르다. 누군가는 지구본이 그려진 색연필을, 또 누군가는 손수 DIY한 교복을 떠올린다. 형태도 색도 다르지만, 그 표면을 쓰다듬으면 어렴풋이 비슷한 감촉이 느껴진다. 조금은 따뜻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조금은 울적한 감정의 결. 보테가 베네타의 이번 쇼에서 내가 떠올린 기억은 치킨의 바삭한 향기였다. 연이어 등장한 오버사이즈 슈트는 부모님이 즐겨 입는 정장을 꼭 닮았고, 모델이 손에 든 슈퍼마켓 봉투 같은 백에는 엄마가 퇴근길에 산 치킨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아서.

파리 디즈니랜드 한복판에서 펼쳐진 코페르니의 이번 쇼가 유독 강력한 후폭풍을 남긴 이유다.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나의 편집장마저 가냘픈 목발에 의지한 채 홀린 듯 디즈니성을 향해 내달렸다고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놀이공원에 가보지 못했다는 그의 마음엔 어떤 동심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을까. 직업도, 위치도, 나이도 구분 없이 모든 이에게 통하는 만국 공통어 ‘동심’의 파워는 크다. 마치 수학여행 가듯 단체로 쇼장에 도착해 추러스를 손에 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쇼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 성 위로 터지는 불꽃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룩의 조화와 디테일을 논하는 세부 사항은 모두 부차적일 뿐. 코페르니의 쇼는 분석보다 감정이 먼저였다. 그리고 이 전략은 아주 잘 통했다.

문득 떠오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우리가 말하는 ‘동심’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인지 보여준다. 디즈니랜드 바로 옆, 꿈과 낭만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현실의 틈에 살아가는 아이 ‘무니’는 가난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장난을 건다. 어른이 보기엔 아찔하고 안쓰러운 그 풍경이 아이의 시선에선 그저 밝고 경쾌한 하루일 뿐. 고백하자면, 어른이 돼버린 나는 벅찬 현실을 외면한 채 디즈니성으로 달리는 아이들이 티켓값은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순진한 아이처럼 굴기 위해서도 어쩌면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패션이 동심을 호출하는 방식도 그렇다. 유년의 감각을 빌려 마냥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을 더 용감하게 살아내려는 시도. 가장 여리고 웃음 많던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해준다. 과거는 현재를 구원한다.

text PARK YEONJE(YEON)
art KIM JIWON(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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