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People have the power to redeem the work of fools.”
– People Have the Power, Patti Smith, 1988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를 바로잡고 세상을 되돌릴 힘이 있다. 패티 스미스는 늘 이런 말을 되뇐다.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선언,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윤리의 문장, 실현은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간절하게 붙잡아야 할 진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스테판 크라스닌스키가 2001년에 결성한 사운드 아트 그룹이다. 그들은 전 세계의 장소성과 기억을 바탕으로 소리와 사물을 채집한다. 체르노빌의 숲, 아마존강, 메데이아의 고분 등. 세계 곳곳에서 채집한 이미지와 소리에 시를 얹고, 침묵의 장소에 목소리를 불어넣는다.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는 지난 10여 년간 현재와 과거를 조응하게 했다. 피크닉에서 7월 20일까지 열리는 전시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 스미스: 끝나지 않을 대화>(이하 <끝나지 않을 대화>)를 위해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스테판 크라스닌스키가 한국을 찾았다.
 기자간담회 질의응답 시간 막바지에 패티와 스테판에게 묻고 싶은 작은 질문이 떠올랐다. 시간 관계상 마지막 질문을 받아야 했고, 뒷자리에 앉은 나는 이후에 준비된 인터뷰가 있으니 질문을 생략했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패티와 스테판이 나를 찾아와 묻는다. “제게 묻고 싶은 게 있지 않았나요?”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마음을 아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패티 스미스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는 여행 중에 처음 만났다고요.
스테판 크라스닌스키(이하 ‘스테판’) 맞아요. 약 10년 전,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 안에서 패티를 만났죠. 처음 만났을 당시, 저는 패티도 잘 알고 있는 뮤지션 니코의 시를 낭독해 줄 목소리를 찾고 있었어요. 니코는 스페인 이비자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사고가 있던 밤에 유일하게 들린 소리는 높은 주파수의 귀뚜라미 울음소리였다고 해요. 저는 그 귀뚜라미 소리를 녹음했고, 여기에 시 낭독을 더하려고 했죠. 패티 스미스(이하 ‘패티’) 스테판이 니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시는 내가 읽을게요”라고 답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죠. 다음 날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갔고, 귀뚜라미 소리 위에 시를 얹는 첫 작업을 했어요. 그때의 감정은 아주 깊고 강렬했죠. 이 작업을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스테판은 패티의 시를 처음 접한 순간이 기억날까요.
스테판 물론입니다. 패티의 작업에 익숙했고, 공연도 여러 번 봤어요. 그는 분명 제게 큰 영감을 준 인물이에요. 흥미롭게도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에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어요. 우연히 패티의 옆자리에 앉았고, 저는 그를 어떤 문화 아이콘으로 인식하기보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느꼈으니까요. 그가 쌓아온 시와 음악, 예술적 영향력은 잠시 잊었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어요.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사람으로. 또 친구가 될 사람으로요. 

여러 국가를 돌며 순회전시 형태로 작업을 보여주고 있죠. 대부분 전시 제목은 ‘Correspondences’였죠. 이번에는 ‘끝나지 않을 대화’고요.
스테판 저희는 10년 넘게 협업을 이어왔어요. <끝나지 않을 대화>는 이를 잘 설명하죠. 우리 대화는 단 한 번도 완결된 적이 없으니까요. 장소를 바꾸며, 시대를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죠. ‘Correspondences’라는 단어는 단순한 편지 교환을 넘어 어떤 사물이나 존재 간 ‘조응’을 뜻하기도 해요. 우리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죠. 때로는 패티의 말 한마디가 저를 어떤 장소로 이끌거든요. 그 여행이 새로운 사운드와 영감으로 돌아와 패티의 글쓰기를 자극하죠.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 작은 진동을 일으키며 우리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패티 스테판은 늘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인도 산맥이나 아마존강, 그린란드 빙하처럼 외딴곳에서 사운드와 오브제를 채집해 와요.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보고 느끼며 즉흥적으로 시를 쓰거나 내러티브를 구성하고요. 그것이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확장될 때도 있죠. 이 모든 작업의 근간에는 늘 사운드와 시가 있어요.

둘은 ‘장소성’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테판 장소성이 작업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담긴 시간의 흔적,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리고 과거의 기억과 공명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장소를 기록하거나 소리를 채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의 깊은 역사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오늘날 맥락에서 다시 소환하는 과정이죠. 예컨대 저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메데이아>에 사용되지 않았던 영상을 가지고 다시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 그곳의 소리, 이미지, 물리적 요소를 수집했습니다. 이런 접근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예술가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행위입니다. 패티 <메데이아>를 위해 스테판은 그리스신화 속 메데이아 같은 시대와 장소로 추정되는 조지아의 고분 발굴지에서 흙을 가져왔어요. 우리는 수백, 수천 년 전 땅속에 묻힌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예술이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상은 땅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자란 미국 뉴저지 남부의 붉은 점토처럼 어떤 흙은 개인의 기억을 품고 있고, 또 어떤 흙은 고대의 유산을 전하죠. 전시장에 있는 메데이아의 흙도 그런 존재예요. 단지 한 줌의 흙이 아니라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땅의 숨결이고,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의 집합체죠. 

‘신성한 장소에서 온 음향적 인상’이라는 말도 했죠. 신성한 장소란 무엇일까요.
스테판 신성한 장소는 단순히 아름답거나 역사적인 장소가 아니에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울리는 곳이죠. 저는 멕시코 테킬라 화산에서 흑요석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아즈텍 샤먼들이 쓰던 돌이죠. 그 돌에 빛이 닿자 그림자가 나타났고, 패티는 그 그림자 위에 시를 썼어요. 사물이 말하고, 소리가 숨 쉬고, 기억이 떠오르는 장소. 신성한 장소란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렇군요. 지금 세상은 종종 폐허와 같은 모습을 띨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폐허 속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패티 인간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국 가장 강력한 힘은 자연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를 되찾아요. 또 경계가 없고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높은 이상을 구현하는 존재라 할 수 있죠. 우리는 예술을 통해 자연을 이야기해요. 연대와 희망을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자연을 다시 바라보며,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요.

‘대멸종 1946-2024’를 보면서 유디트 샬란스키가 쓴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이 떠올랐어요. 그 책의 부제목을 통해 묻고 싶어요. ‘소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패티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게 된 지역을 보면,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전쟁, 방사능, 파괴, 과잉 건축 같은 인간의 개입이 멈춘 자리에서 오히려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동식물을 마주할 수 있죠. 소멸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자연이 우리보다 오래 기억하고 살아남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전시의 여러 작품 속 화자는 많은 것을 이겨낸 사람처럼 보여요. 죽음과 고독 같은 상실을 이겨낸 사람이요. 당신에게 상실은 어떤 의미인가요.
패티 저도 상실의 슬픔을 경험한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었고, 깊은 외로움도 지나왔죠.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일인지 배웠어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가능한 한 충실하게 살아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쓴 책들, 제 아이들, 작업들, 그리고 제가 기르는 고양이에게도 작별을 고해야 할 날이 오겠죠. 그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가장 본질적인 선물은 삶 자체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무언가를 바꿀 수 없음에도 싸우는 것,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패티 우리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권력을 쥔 사람들, 그러니까 대개 민족주의적이고 부유하며, 독재자에 가까운 사람들은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는 그런 현실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수적 힘으로 맞설 수밖에요. 그 시작은 ‘좋은 사람’이 되는 데 있어요. 친절을 퍼뜨리고, 서로를 돕는 것이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핵심이죠.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집단적 행동 없이는 불가능해요. 수백 명이 아닌 수백만 명이 함께해야 해요. 간디가 그랬듯이요. 우리에게는 힘이 있어요. 우리의 숫자, 투표, 소비자로서의 선택이라는 힘이요. 우리는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잊었을 뿐이에요. 이제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듯이 “The People have the power to redeem the work of fools … to turn the world around.(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자들의 행위를 바로잡고,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기다리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껴요.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스테판 우리가 진행하는 작업, 특히 <끝나지 않을 대화>는 늘 현재라는 시간을 통과해 미래를 사유하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지금 내리는 선택들이 미래의 문법을 쓰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우리의 사운드스케이프는 단지 소리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장치이기도 해요. 젊은 세대는 예술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아요. 예술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감각과 의식의 훈련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미래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그리고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패티 스미스에게 한 질문. 패티와 스테판은 서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을 다루지만, 한 가지 주제로 협업한다. 그 과정은 어떨까. “우리가 작업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장소 특정적이에요. 체르노빌, 인도 산악지대, 북극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이
것저것을 채집하죠. 저는 이제 그렇게 먼 곳을 여행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스테판은 ‘여행자’이고, 저는 ‘청자’예요. 스테판이 채집한 것을 저는 스튜디오에서 듣고 느낍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함께 작업하죠. 윌리엄 버로스는 ‘세 번째 정신third mind’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스테판과 제 정신이 만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는 거예요.”
<끝나지 않을 대화>, 두 사람은 주로 어떤 대화를 할까. “모든 걸 얘기하죠. 하하. 세상에 대한 이야기, 정치, 커피, 멋진 신발이나 부츠! 또 책, 영화, 음식까지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그걸 어떻게 작업으로 옮길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그리고 그 작업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죠. 아까 당신이 손 든 걸 봤어요. 그래서 같이 대화를 좀 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Text 바론(Baron, 윤승현)
Art 잉걸(Ingur, 양혜인)

Discover more in <DAZED> KOREA JUNE 2025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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