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최’라고 자주 불렸죠?
영화 의 아카데미 시상식 때 봉준호 감독님의 통역사로 알려졌죠. 사실 그 이후로 말을 되게 아꼈어요.(웃음) 영화인이긴 하지만 메이커로 알려진 게 아니다 보니, 그 당시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고요.
모든 언론과 사람들이 궁금해한 인물인데, 왠지 정보가 많진 않더라고요.
오스카 이후 일상으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방황한 것 같아요. 20대 후반에, 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 삶이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이 되게 어지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도 끝나고 너무 편하게 잘 먹고 살 기회가 많았거든요. 돈도 그렇고, 주류의 어떤 것에 확 들어갈 수 있는 황금 찬스가 제 앞에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별 고민 없이 ‘아닌 것 같아’ 했어요. 그냥 산에 들어가서 도 닦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스스로를 무척 고립시키면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계속 정리하고, 마음 잡고.
어딘가 굉장히 좋은 반골 기질이 느껴져요.
맞아요. 좀 있어요.(웃음)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원해야 한다고 남들에게 교육받은 게 아닐까. 그런 건 좀 쉽잖아요.
4년 전쯤 에 기고한 글을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이번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어요. 마침 한국에 있었고요.
어떤 감 같은 거죠.(웃음) 좋은 우연이 여럿 있었잖아요. 사무실도 마침 사는 동네 근처이고, 보내주신 메일 속 단어들도 꽂혔고요. 또, 오늘 공책 갖고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 문자를 받았을 때도 속으로 ‘나 필기 덕후인데’ 하면서 좋았거든요. 생각해 보면 믿을 수 있는 건 직감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인터뷰를 준비하던 차에 그 글을 다시 읽어봤어요. 아카데미에서 이 4관왕을한 그 자리에 있던 그 열기가 한 문장 한 문장 아직 남아 있던데요. 이제와 솔직하게 묻고 싶었어요. 그 자리에 함께한 게 운 같은지, 운명 같은지.
그냥 둘 다가 아닐까요. 똑같은 것 같아요. 운이기도 하고, 운명이기도 하고. 근데 그런 건 있어요. ‘나는 여기서 이걸 해야 해’ 같은. ‘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라고 느끼는 그 순간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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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최이기도 하지만 최성재이기도 해요. 당신을 만나 왜 영화를 좋아하고 시작했는지 묻고 싶었어요. 어쩌면 봉준호라는 이름을 지우고서라도.
영화는 중학생 때부터 좋아한 것 같아요. 나름 우울했나 봐요, 그 당시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잠도 잘 못 자고, 그냥 제 일상이 좀 많이 싫었던 것 같아요. 되게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에 있었는데, 어릴 때 경험한 미국 생활이 더 자유롭다고 느낀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학생의 삶은 너무 지루하고 가혹
하고,(웃음) 매일이 그랬다는 건 아니에요. 그 안에서도 나름의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냥 그 생활 패턴이 되게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잠도 안 오니 영화를 보자, 영화가 제게는 엄청 큰 도피처였던 거죠. 그렇게 중학생 때부터 영화를 막 미친 듯이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가장 잘 아는 게 영화가 됐고, 영향을 준 작품을 만나면서 나도 이 분야에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