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님, 우리 큰일 난 것 같아요. 바퀴가 모래에 빠졌어요.” 새벽 여섯 시, 수면 위로 뜬 태양이 바다를 붉게 적실 즈음 태안 앞바다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모래사장에 서 있는 지프 랭글러는 어슴푸레한 빛을 받아 묘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강렬한 핑크색. 해가 뜨거나 지거나 그 찰나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별일 아닐 거야. 지프는 강한 차야. 난 지프를 믿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와 포토그래퍼는 해변에 널브러진 돌덩이를 주워 빠진 바퀴 아래에 끼워 넣었다. 다시 한번 힘차게 페달을 밟아본다. “그래도 안 빠져요, 기자님. 견인차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고민할 시간 없어요. 이거 타고 항해할 거 아니죠?” 머릿속에 오만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생각이 향하는 결말은 ‘난 여기서 끝인가’, ‘견인 비용은 얼마지?’, ‘만약 견인차가 오기 전에 침수되면 어떡하지?’,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차 값은 얼마더라’(뉴 랭글러 투스카데로 에디션 루비콘 하드탑 단일 모델 가격은 8,190만 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여기서 끝인가’의 스토리는 내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시련이 아니었다.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지프 랭글러 보도 자료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사막도 건너는 지프 랭글러.” 사막이나 모래사장이나. 꼬질꼬질한 손을 바지에 대충 닦고 휴대전화로 랭글러 4X4 기능을 검색했다.
“차량 모드를 N단에서 4-LO로 바꿔봐요. 그러고는 센터페시아 아랫부분 FRONT+REAR 버튼을 누르고 다시 후진해 봐요.” 떠오르는 태양과 차오르는 바다 사이에서 어떻게든 탈출해야만 한다.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애꿎은 모래만 사방으로 튀며 헛돌던 앞바퀴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울잠에서 깬 곰처럼 뒤뚱뒤뚱 모래사장 밖으로 나온 지프 랭글러.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해변에서 멀찍이 빠져나왔다. 해암에 부딪혀 날아오르는 파도, 태양으로 붉게 물든 바다, 수평선 위로 기지개 켜는 겨울 태양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만으로 오늘 촬영은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기자님, 아까 우리 좀 웃겼던 것 같아요. 지프를 너무 불신했어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포토그래퍼가 말했다. 맞다. 지프의 명성을 귀로만 들었지 직접 발로 밟은 건 처음이니까. 지프는 현대 오프로드의 아이콘이자 제2차 세계대전 중 탄생한 밀리터리 DNA가 탑재된 군용 자동차에서 시작되었다. 모래사장에서 활용한 ‘FRONT+REAR 전자식 디퍼렌셜 잠금장치’는 네 개의 휠에 출력을 균등하게 배분해 접지력을 극대화하는 기능으로 어떤 험지에서도 낙오되지 않는 생존력을 보여준다.
슴슴한 게국지로 허기진 몸과 놀란 마음을 달래고 태안의 해안가를 달렸다. 지프 랭글러는 상냥한 자동차는 아니다. 창이 닫혀 있어도 ‘샤샤샤’, ‘슈슈슈’ 하는 풍절음을 막을 수 없으며, 거친 주행감과 더불어 납작해진 엉덩이는 원래의 탄력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무의미하다. 기술 개발력이 모자라서라기보다 온갖 오지에서 굴러가기 위해 불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덜어내고 만든 자동차니까. 랭글러를 타면서 편안한 승차감을 원하는 건 묵직한 홀스하이드 재킷을 입으면서 아이더 다운으로 만든 패딩 재킷만큼 가볍고 따뜻한 보온성을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지프는 의도적으로 춥고 불편하게 설계된 자동차다. 대신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자동차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지프 랭글러 라인업의 스테디셀러 ‘뉴 랭글러 루비콘 하드탑’ 모델을 기반으로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의전 행사 시 경의와 환영을 표할 때 발사하는 ‘예포 21발’에서 착안해 전 세계에 6000대 한정 생산한 것 중 국내에는 21대만 선보였다. 네모반듯한 윈드 실드, 높은 차고, 반세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 등 지프 랭글러만이 지닌 고유함은 요즘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희소성이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되 본질적 요소를 잃지 않고 지키는 것. 믿거나 말거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지프 랭글러 오너가 옆 차선에 나타나 엄지를 치켜들었다. 두 대의 지프가 나란히 달리던 그 짧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Text 타쿠(Taku, 강승엽)
Photography Kim Jiyoung
Art 던(Dawn, 위다함)
Discover more in DAZED KOREA JANUARY 2025 iss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