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더 재킷은 나누슈카(Nanushka), 레더 글러브는 에디터의 것.

“2009년도인가, 그때 레스보스를 그만뒀을 적에 전화가 온 거야. ‘사장님 이대로 그만두면 안 돼요. 우리끼리 어디서 모임을 해요.’ 청소년 애들이 그러면서 전화가 왔어. 그러고 나서 이제는 십몇 년이 흘렀잖아. 어떻게 알고 딱 이태원으로 오더라고. 그 레스보스라는 장소가 내가 20대 때 명동에 나간 것처럼 자기네 어떤 돌파구, 비상구 같은 거였겠지. 자기 숨통을 트여준 장소란 말이야. 10대 애들이 갈 데가 없잖아. 성소수자들이, 미성년자가 어딜 가.” 전국 각지 레즈비언 집결! 1990년대 신촌에서 시작해 2023년 이태원까지, 국내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에는 여전히 우리들의 ‘명우형’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권아람과 명우형이 함께 호명하고 조명하는 이름과 공간들.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윤김명우 나는 명우형이야. 일반이야? 이반이야? 나처럼 이렇게 까야지.(웃음) 하하하. 날 어떻게 알았어?
권아람 새로운 사람 오면 항상 체크부터 하세요.
영화 주인공이시잖아요.
윤김명우 아냐. 하도 까발려서. 그리고 이제 더 나올 사람이 없잖아. 내 주변에 얼굴 내비치면서, 자기한테 그런 불이익이 올까 두려우니까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권아람 사실 명우형이 무척 긴 세월 동안 활동하셨기 때문에, 레즈비언들의 공간사를 쓰는 데 되게 접점이 많은 분이기도 한 거예요. 직접, 이제 고3 때 명동부터 해서.
윤김명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녔어.
권아람 그때부터 직접 명동에 다니셨고,(웃음) 그리고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신촌공원에 있는 젊은 레즈비언 친구들이 또 명우형이 운영하시는 레스보스를 많이 찾기도했고,그 이후에도 또 자리 옮겨가면서 계속 장사를 해오셨으니까.
윤김명우 네 번 옮겼으니까.
권아람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퀴어 역사를 알고 있는 분을 꼽자면 사실 명우형이 정말 유일무이한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꼭 명우형을 만나고 싶었죠. 다큐멘터리로 담고 싶었고.
윤김명우 집요해
영화는 명우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명동의 ‘샤넬다방’부터 신촌 ‘레스보스’, ‘신촌 공원’, 댄스 공간 ‘루땐’까지 레즈비언들이 알게 모르게 점유한 공간들, 거기서 파생된 커뮤니티에 대해 다뤄요. 사실 제겐 모두 새로운 이야기였어요.
윤김명우 우리는 대화가 일반 사람들하고 다르잖아. 벌써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부터 다르지만, 대화 자체도 그래. 만약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 거 아니야, 저것들?” 이럴 거야.(웃음) 우리끼리만 통하는 얘기가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모였겠지. 한 번은 나랑 여자친구랑, 선배랑 선배 파트너랑 넷이서 레스토랑을 갔는데 옆자리에 이성 커플이 있었던 거야. 뭐라 그러는지 알아? “쟤네 레즈비언들은 무슨 재미로 저렇게···” 이 지랄하는 거 있지? 그리고 어디가면 또 내 이야기를 해. 자기들끼리 내가 “여자냐,남자냐” 막 내기를 해. 그러다 나한테 물어보러 와. 요즘에 그러면 난리 나지.(웃음)
그중에 명우형이 운영하셨던 레스보스가 2000년대 청소년 레즈비언들의 성지였다고요.
윤김명우 아휴,말도 못했어. 365일 꽉꽉 찼어.(웃음) 요즘 클럽에 가면 경호원이 다 있잖아. 근데 나는 그 몇백 명 애들을 나 혼자 진두지휘를 다 한거야. 전국에서 다 와, 여기는. 뭐 성소수자라는거 그거 하나로 모인거지, 성격들은 다 달라. 그러니까 별 애들이 다 있는거야. 그 애들이 나중에 성인이 됐잖아. 내가 “너네 언제 공부했니?” 이랬다니까. 그렇게 잘 놀더니 이대, 서울대 난리가 났어.
…
오늘 인터뷰하면서 수많은 이름이 불렸어요. 명우형은 모든 걸 다 기억해요? 무얼 기억하고 싶어요?
윤김명우 나는 제일 걱정되는 게 건강.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기억을 안 잊어 버리고 살고 싶어서. 치매로 그 기억을 다 잊어버리면 끝이거든. 사랑하는 후배, 이 곳 기억도 잊어버리고 엉뚱한 소리 하는 게 나는 제일 두려운거지.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윤김명우 기억하겠지~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윤김명우 형이 우리를 위해 잘 있다 가셨구나. 행복하게. 그냥 우스갯소리야. 어떤 애가 “형, 너무 힘드니까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데, 아니야. 그나마 여기에서 애들을 만날 수 있잖아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찾아와 주고, 이러는 게 바로 활력소지. 나 자신의 슬픔도 있지만,그 슬픔만 갖고 살 수가 없어. 어떨 땐 나도 고달프고 굉장히 힘들 때가 많아. 근데 이렇게 찾아와도 애들하고 얘기하고 있으면, 그러면 또 잊어버려. 거기서 감동도 받고 행복하기도 하고 그래. 많은 애들이 기억해주고 이러는 것보다도 소소하게. 사실 남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도 없어. 후배들이 고통스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나는 끝까지 갈 거니까.
진짜 형이네요.
윤김명우 그런 다짐을 하고 커밍아웃을 했으니까. 어디든 나한테 부탁을 하면 직접 얼굴 비쳐 다 해주려고 해. 하나의 밀알이 썩어야 싹이 나듯이, 누군가 희생해야 그게 되는거지. 벽에서 안 나오고 움츠리고 살면 소생할 수가 없다고 난 생각해. 뭔가 이렇게 터뜨리면서 그 사람들의 인권과 삶에 대해 우리가 당당하게, 우리도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와야지. 창피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움츠리고 살면 끝까지 그렇게 살아야 해. 그러니까 젊은 애들도 요새 대단하다니까. 인권 단체도 그렇고, 그리고 인권 변호사도 있고. 우리도 지금 차츰차츰 다져지고 있잖아.
영화 개봉이 기대돼요. 명우형은 더 유명해질 것 같고요.
권아람 그래서 이 영화가 또 하나의 창구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 자신을 외롭지 않게 잘 돌보면서 살아오신 멋있는 선배님들과 이렇게 재미난 공간도있었으니까, 나도 내 자리를 좀 풍요롭게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윤김명우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라고 슬픈 일이 없었겠어? 세상 살면서 굴곡이 많았지. 영화의 한 부분에만 내가 좀 그런게 나왔는데, 남들한테 그 런 거 보여주기 싫어. 저러니까 저렇게 살았지. 난 이 소리 듣기 싫어. 손가락질 받는 건 상관없어. 슬픈 건 슬픈거고, 즐거운 건 즐거운 거야. “이런삶도 나한테 행복한 삶이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러는 거지. “해삐 해피!!”
Text Kwon Sohee
Fashion Marco Kim
Photography Shin Cajun
Art Joung Minjae
Hair & Makeup Lee S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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