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패션 매거진의 피처 에디터다. 첫 문장을 이렇게 떼기까지 오래 고민했다. 저 문장에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면 ‘패션’과 ‘피처’일 테다. 패션지에서 패션이라는 말은 수만가지 뜻으로 통용된다. 옷, 스타일, 유행, 문명, 아름다움, 문화적 장르, 자유롭고 민주적인 표현, 등등. 그렇기에 패션이라는 주제는 늘 재미와 질문과 비판의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성별, 고정관념, 소수자, 세대, 정치, 이 역시 무궁무진하다. 이 진원지 가운데 패션 에디터 아닌 피처 에디터 권소희 또한 ‘여기 있다’. 그 존재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설명해야 할 차례이나, 현재로선 내겐 다소 멋쩍은 이야기다. 다만 매달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일을 아주 기본으로 하며 달음박질 하듯 산다.
사진이라는 매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패션지 속 피처 기사의 사진은 보다 기록적이다. 물론 화보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획기적이며 새로운 시즌 컬렉션의 옷에 먼저 눈길이 갈 수 있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달마다 지금, 현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의 초상을 사진가와 함께 담는다. 어떤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동시대의 패션지가 동시대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솔직히 말해 ‘패션적’이라거나 ‘미학적’이라고 하는 수준까지 이르긴 어렵지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갖은 시도들을 벌이는 가운데 종종 ‘이미지를 양산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가 있다. 피사체의 표정, 포즈에서 드러나는, 혹은 유도해내어, 이윽고 바라던 컷들을 건지는 그때, 그 찰나의 기쁨과는 별개로 자칫 ‘클리셰’와 ‘섹슈얼리티’ 같은 말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또는 아름다움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나의 의지와 스태프들의 헌신에 의해 치장된 몸이 카메라 앞에서 매혹한다. 그 광경을 가만 보고 있자면 오늘날 직접 피사체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는 불완전한 물음 하나가 생긴다. 이건 인물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패션을 둘러싼 무수한 개념적, 사회적인 쟁점과 질문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 사진 작가가 있다. ‘천의 얼굴’ 신디 셔먼의 시도와 태도가 그렇다. 광고, 영화 등 대중 이미지 속이 아닌 직접 그 자신의 피사체가 되어 무수한 초상을 남긴 신디 셔먼. 그는 수많은 분장과 재창조를 통해 사진 속에서 다른 시대, 다른 사람으로 산다. 무엇보다 그가 ‘여성’으로서 재현한 여성의 모습들은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났다거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 가려진 여성의 모습들을 폭로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그의 작품은 20 세기 미국, 대중 매체와 대량 이미지들이 범람하던 시대를 역행하며 특히 페미니즘적 비평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정작 신디 셔먼 자신은 그리 달가워 하지 않았다는 풍문이 있다.) 그가 의문을 제기하고 풍자한 문제 중엔 응당 패션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종종 패션 매거진에 모델로 등장하거나 루이비통, 꼼 데 가르송, 발렌시아가 등 패션 브랜드와 긴밀한 협업 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패션 모델의 매끄럽고 잘 빠진 몸매에 대한 반향으로, 으레 A컷이라 불리는 이미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그런 신디 셔먼의 모순적 행보를 가만 보고 있자면 ‘안티 패션’을 주창해온 그의 모습조차도 패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패션’과 ‘안티 패션’은 모순어법이자 영원회귀적 관념이다.
그 가운데 분명한 사실은, 신디 셔먼은 자신의 초상을 통해 무수한 자아의 붕괴, 단절, 변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전적으로 자신만을 표현하는 그 자화상을 보고 패션이니 안티 패션이니, 혹은 그밖에 다른 무엇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는 이 현상에 관해서는 결국 현대인의 ‘정체성’의 탐구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공개된 신디 셔먼의 전시 에는 이상하고 웃긴 기류가 흐른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떡하니 놓인 신디 셔먼의 기기괴괴한 초상을 가만 보고 있자면 그의 희극 무대는 비단 사진 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을 아울러 선언이라는 말 이상으로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50년 간 계속된 그의 초상은, 그의 선언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이상하다. 유행이나 트렌드라는 헤게모니를 생각한다면 패션 속에 있을 때 그의 초상은 더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또한 안티 패션이다.
*신디 셔먼의 첫 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대표작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 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9월 17일까지 볼 수 있다.
Text Kwon Sohee
Art Lee S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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