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그 시절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 아래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 봤자 정규교육을 통해 정상인의 면모로 성장한 그들을 잠식한 기존 기법과 사회 통념, 사회화한 자의식을 뚫고 전혀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건 말처럼, 의지처럼 쉽지 않았다. 1925년 무렵,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만 레이, 앙드레 브르통, 이브 탕 기, 막스 모리스가 모여 앉았다. 그들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방법을 골몰하고 시도하고 연구했다. 네 명의 예술가는 각각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와 형용사를 생각한 다음 동시에 펼쳐 보였다. 이를 한 문장으로 적었더니 이렇게 되었다. “우아한 시체가 새 포도주를 마시겠다.

또 네 사람은 종이 한 장을 네 단으로 접은 뒤 돌아가며 사람 몸의 한 부분씩을 나눠 그렸다. 서로 뭘 그리는지 보지 못한 채 머리, 가슴, , 다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린 다음 펼쳤더니 초현실 너머 난생처음 보는 기상천외한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그림이나 문장의 일부를 만들면 그 다음 사람이 이어서 나머지를 완성하는 기법인 ‘우아한 시체’가 탄생한 순간.


고대 로마 시대의 청동 조각상 ‘러너’부터 움베르토 보초니의 조각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이 자리 잡은 공간. 루키노 비스콘티와 루카 과다니노의 영화에서 본 듯한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거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길이란 무엇인가.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지만 거리의 풍경과 그곳을 오가는 이들의 스타일과 생김새와 입장과 마음가짐은 저마다 다를 따름 이다. 저 길 끝엔 전혀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요 앞의 모퉁이를 돌면 예상치 못한 만남이 불현듯 등장할지도 모른다.


보테가 베네타 2023년 겨울 컬렉션은 나이와 성별, 계급과 신분, 관념과 법칙이 조건 없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리에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놓인 컬렉션은 거리와 그곳을 오가는 이들이 펼쳐낸 ‘우아한 시체’ 놀이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겨울 컬렉션을 시작으로 마티유 블라지가 구현한 캐릭터의 서사는 연달아 이어지지만 예상 밖의 코드가 쌓이고 쌓여 만 들어진 즐거움과 자유, 감동과 자신감이 하나의 바구니 안에 두루 담긴다.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슈미즈 드레스와 양말처럼 보이는 레더 부츠를 매치한 홈 웨어 룩, 격식을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나파 레더에 실사로 프린트한 핀스트라이프 패턴 셔츠와 그레이 플란넬 파자마 룩, 산드로 보티 첼리의 ‘프리마베라’ 속 클로리스와 그가 변신한 플로라에서 영감을 받은 섬 세한 실크 자수 디테일, 깃털과 인어의 꼬리를 하나로 엮은 듯한 실루엣, 하우스의 상징인 가죽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장인의 기술력까지 컬렉션을 장악한 여든한 벌의 옷은 ‘컬렉션’이라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각각 나름의 생명력을 뽐내는 동시에 마치 바통 터치를 하며 이어달리기를 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떤 옷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상상한다. 아주 평범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달라 튀지는 않아야 하고, 별스럽게 눈에 띄는 건 싫지만 멋있어 보이고는 싶다. 얼핏 멋져 보인다 한들 단순한 눈요기로 소비당하거나 서커스단의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건 싫다. 오직 겉멋 든 예술가만이 싸구려 접착제로 붙인 것 같은 콧수염을 기르거나 일부러 신발에 구멍을 낸다. 클럽에 가도 제일 잘 빼입은 자는 구석에서 쭈볏대며 술만 축낼 뿐 춤은 좀 늘어난 티셔츠 한 장만 입은 애들이 제일 잘 춘다. 예측 가능하지만 그 무슨 감각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옷.


마티유 블라지가 2022 겨울 컬렉션부터 2023 겨울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3부작에 걸쳐 선보인 이탈리아를 향한 헌사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그가 선보인 옷을 찬찬히 다시 살피며 오스카 와일드의 저 유명한 말을 곱씹는다.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하니까.” 마티유 블라지와 보테가 베네타의 우아한 시체 놀이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Text Choi Jiwoong
Art Kim Sehwa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