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 영화, 음악, 인터뷰… 무형의 문화 콘텐츠에 관심 있다면 지금부터 시작되는 쿠니치 노무라의 이야기를 들을 것, 반드시.
당신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인터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만 던지는 것은 매너가 아니지만 당신 이야기를 통해 내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괜찮다. 시작해보자.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해보자. 당신의 증조부는 리포터였고, 어머니는 음식 연구가이며, 여동생은 요리사다.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음, 잘 모르겠다. 내 가족은 꽤 보수적이다. 3세대가 같은 학교를 나왔고, 친척들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 대단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자랐나?
유럽과 도쿄에서 나고 자랐다. 나는 우리 가족 중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두 똑같은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나는 그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독학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가족과 공통점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아버지를 자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항상 늦게까지 일하고 술 마시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는 전형적인 일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멋진 분이셨다. 모두에게 헌신하셨다. 돈을 잘 받지 못해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그저 재미가 있으면 되었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그런 면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어머니는 가끔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야 하는데 하고 농담을 하신다. 매우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그에 감사하다.
당신의 젊었을 적 키워드는 ‘여행’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일본 전역은 물론 미국 텍사스까지 여행했다고 들었다. 무엇을 얻었는가?
정확히 말해 나는 텍사스에서 1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 때 일본을 여행하지는 않았다. 당시 여행을 많이 하긴 했지만. 여행은 20대 때 더 많이 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밖에서도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멋지지만 꽤 지루하기도 하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행할 때는 혼자 다니는가,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인가?
가끔은 친구들과 다니지만 주로 혼자 다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서 바에 간다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여행이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에디터로서 그쪽 분야 사람들은 당신을 알아줄지 모르지만,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은 당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성장 배경 등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일례로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나왔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만나 놀 수 있는 도쿄 학교의 친구들과는 다르다. 상관없다.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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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이다. 는 2000년도에 출판되었다. 이것은 서브컬처, 패션, 건축, 영화, 음악, 사진 그리고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당신은 웨스 앤더슨, 스파이크 존스, 구스 뱅상, 조너선 아이브, 마크 뉴슨, 리처드 허튼, 캔 케시,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페티본, 그리고 배리 맥기를 포함한 100명이 넘는 유명한 인사를 인터뷰했다. 그 당시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는가?
<Sputnik: Whole Life Catalogue>에 대해서는 조금 전에 살짝 얘기했다. 나는 1999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여행을 했다. 아마 8000달러 정도 쓴 것 같다. 별로 돈이 들지 않았다. 먼저 세계 곳곳의 항공권을 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택시를 타지 않고 매일 걸어 다녔다. 휴대폰도 없었고, 항상 누군가의 집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다. 그 덕분에 “당신은 에디터인가? 이런 글을 써줄 수 있는가?” 하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 이것이 에디터로서 나의 초창기 얘기이고, 당시엔 웨스 앤더슨이나 스파이크 존스를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뷰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2004년도에 당신은 Tripster를 설립했다. 당시 빔즈 재팬의 카탈로그에 조언을 하거나 유니클로와 나이키의 이벤트 공간을 디자인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나는 내 친구와 함께 Tripster를 설립했다. 2004년 즈음이다. 하지만 주로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을 위해서였다. 빔즈 재팬 카탈로그나 캠페인 작업을 한 것은 나의 개인적인 일이었다.
유니클로와 나이키도 그러한가.
그렇다. 노스페이스도.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아웃소스와 리더 그룹을 만들었다. 이것이 훨씬 쉽다. 만약 회사를 설립하면, 회사를 먹여 살릴 일을 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회사를 만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예를 들어 대형 TV 광고를 만들 수 있 는 <데이즈드> 에디터를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계약은 하겠지만 필요한 사람은 내가 직접 고르고 그들과 회사가 직접 계약하도록 요청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중개료를 받듯이 그들의 돈을 훔칠 일이 없고 이 편이 더 깔끔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 만약 내가 엿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그저 같이 일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다른 이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 그러면 나는 책임감이 덜하다.
또 이 무렵부터 당신은 뮤지션들과 함께 파티를 즐긴다. 다키미 겐지 Kenji Takimi, 애벌렌치스The Avalenches, DJ 밀로, LCD 사운드 시스템의 제임스 머피James Murphy 등 엄청났다. 뮤지션이 당신 삶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나는 오직 친구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파티를 연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우연히 만나고 친구가 된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는 함께 파티를 즐기지 않는다. 오직 친구들만 참석할 수 있다. 또 파티에는 항상 음악이 있어야 한다. 이는 10대 시절부터 가장 큰 취미였다. 물론 음악 취향은 바뀐다. 하지만 어떤 곡이든 춤추기에 좋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취미이기 때문에 파티를 통해 돈을 벌 생각이 없다. 파티는 재미있어야 한다. 파티가 다른 무언가와 엮이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에게 술을 사주고 할인을 해준다. 이게 내 신념이다. 나는 파티에 온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술을 마시지 못하거나 반대로 큰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내게 착하다고 한다. “왜 그러는 거야?” 하면 나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모두가 파티를 즐겼으면 한다. 그러면 나도 즐겁다. 지난주 금요일에 애벌렌치스와 함께 파티를 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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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Lee Bom
Interview Kim Bebe
Photography Nico Perez
Coordinator Tomoko O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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