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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

201706 #110

By EDITOR'S LETTER

고 노무현 대통령은 등산할 때마다 국내 등산복 브랜드를 번갈아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라푸마, 트렉스타, 영원 등등.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뉴스가 올라왔다.
등산하면서 쓴 선글라스가 수입 브랜드 오클리였다고,
국산 선글라스도 좋은 것 많은데 그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 정권에서 최순실은 비전문가를 써서 대충 가방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대통령에게
들게 했다. 언론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가방을 들었다고 마치 애국자인 양 대서특필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모두가 안다.

며칠 전 대선에서 떨어진 모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션(Fashion)’ 좌파라는 말을 썼다.
패션 좌파가 신조어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 말은 강남에서 사치스럽게 유흥을 즐기면서 좌파로서
청렴한 척하는 부류를 뜻한다. 철저히 ‘패션=사치’라는 기준에서 파생된 언어다.

우리는 대통령 혹은 공인의 사치 기준으로 패션을 삼는다. 그들은 싼 옷, 국내 브랜드의 옷,
낡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옷, 수입 브랜드 옷, 새 옷을 입은 대통령.
뭔가 모를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의 경우는 이것을 잘 활용한 경우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입은 의상을 이례적으로 스스로 시시콜콜하게 기재해서 발표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50만원대의 ‘조나스&시에’라는 슈트 맞춤 브랜드였고, 영부인은 루이 비통
투피스를 입었으나 빌려서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서민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고액 연봉자로 직장 생활을 했던 마크롱의 부자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마크롱의
라이벌이던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1600만원 상당의 슈트 두 벌을 선물받아 대중의 분노를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철저한 전략이다.

패션은 전략이고 산업이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벌 구입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수입 브랜드를 입은 경험을 통해 루이 비통처럼 대대손손 물려받아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이다.

나이키를 신고 수입 브랜드 입은 공인을 욕하거나
100만원짜리 아이폰을 쓰면서 50만원짜리 티셔츠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우는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패션관이 ‘득’이 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201606 #98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제가 쓰던 방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은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높이 있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의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답답했는지 한겨울에도 전 의자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그럴 때면 늘 여지없이 저를 맞은 것이 바로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뾰족하게 날이 선 모습으로, 가끔씩은
소시지 반찬, 네, 그 동그란 미소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달이 많이 좋았나 봅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달을 향해 뭔가를 썼으니까요.
달의 모습이 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달에 대한 역할도 매일 달랐습니다. 친구도 됐다가 짝사랑하는
연인도 됐다가 미래의 내 자신도 됐다가 하나님도 됐습니다. ‘달’이라는 제목으로 들쑥날쑥
써 놓은 메모가 3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담긴 것을 보면 참 많이도 의지했나 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상을 찾아 헤매던, 외롭던 사춘기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한 달 좀 힘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못 가 생니를 뽑아낼 만큼 곪아버린 교정 치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불어온 봄바람에 싱숭생숭 코 평수가 넓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이래버렸습니다.

“몰라. 사춘기인가 봐.”

思春期. 한자로 사춘기는 생각할 사, 봄 춘, 때 기, 이렇습니다.
여기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함을 의미합니다. 땅속에서 솟아 껍질을 깨는 아픔, 그러면서 어떤
세상 밖 풍경이 펼쳐질지 꿈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봄을 말입니다.

그렇게 따져보니 사춘기가 꼭 10대만의 특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싹 틔우려는
창조적인 소수, 그들에게 사춘기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반복될 테니까요.
멀리서 찾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척박한 한국 잡지 시장에서 남성지도, 여성지도 아닌 패션지의
형태로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즈드>야말로 평생 사춘기 팔자, 아니겠습니까?
마냥 씨앗만 뿌리다 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휘황찬란한 부록 한번 못 드린 마음에서 아마도 제가
대신 사춘기 병에 걸렸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인 사춘기를 즐기겠습니다.
안정보다는 변화, 기득권보다는 미래의 세력,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독창적인 패션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새싹이 움트도록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달 6월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역시 저희와 맥락을 함께합니다.
제 작은 창을 비추며 저를 달래던 그 달은 <데이즈드>에게도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