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컬처, 로드맨.

FASHION WEEK AND IT'S SHUTDOWN, IN A BLACK TRACKSUIT AND IT'S SHUTDOWN.

Text Park Soeun



지난 1월과 2월, 오는 3월 패션 캘린더를 빼곡히 메운 주류 패션의 흐름을 뒤로한 채 길거리 패션으로 눈을 돌린다. 길거리 패션을 지그시 응시하다 보면 응당 명분이 있는 특이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명분을 영국에서 찾았다. 좁은 간격의 푸퍼 재킷과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트랙 팬츠를 입고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검은색 발라클라바를 쓴 남자들이 무리 지어 거리를 활보한다. 세상은 이들을 ‘로드맨’이라고 칭한다. 미국의 일리노이주 시카고 갱단에서 시작된 드릴drill과 영국의 UK 개러지에서 파생된 그라임grime, 그리고 UK 드릴 힙합 문화가 로드맨의 시작. 거칠고 자극적인 가사가 빠른 비트와 귀를 찌르듯 강렬한 엇박의 파열음 사이로 던져진다. 단순, 실속 없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저용의 기세를 부리는 것이려니. 그렇게 넘기기엔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저항은 뚜렷했다.

난 그 비애를 가까이하기 위해 런던 서더크 출신의 영국 래퍼 디지 래스컬의 2003년 앨범 반복 재생을 택했다. 그중 ‘Fix Up, Look Sharp’트랙. 변주 없이 반복되는 드럼 펀치 위로 “날카로워 보이도록 고쳐 잡아. 세계의 한가운데 서서 곧은 자세를 유지해. 나는 로스코의 대위니까, 최고의 병사를 보내는 것이 좋겠어”라는 디지 래스컬의 대항적 가사가 귀에 직선적으로 꽂힌다. 마치 과녁에 10점, 그 중간을 정확히 저격하는 총알과 명사수처럼. 사회에서 겉도는 이민자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가난의 대물림, 결코 넘을 수 없는 사회적 지위와 차별을 드릴과 그라임 장르의 래퍼들이 비트 위에 풀어 낸다. 대표적 아티스트로는 와일리, 스켑타, 슬로타이가 있고. 트랙을 플레이하다보면 묘하게 그들의 웃음기 어린 표정이 일순 뇌리를 스친다. 결코 얄밉고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아니고, 오히려 승리를 확신하는 이성적 형태로.

CCTV를 통한 경찰 감시와 검열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카멜레온이 되길 자처한 듯하다. 거무 튀튀한 보호색을 내 비친 것. 권력과 개성, 감도를 드러내는 주류 패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모습으로. 로드맨 문화를 이끄는 이들에게 옷은 방어의 메커니즘으로 재해석된다. 디지 래스컬의 ‘Fix Up, Look Sharp’ 가사에 언급된 나이키 에어포스 1과 비니, 패션 컬렉션에선 검은 트랙 집업과 팬츠를 걸치라고 훅을 던지는 스켑타의 ‘Shutdown’ 트랙을 통해 로드맨 문화의 위장술이 한번 더 명징해진다.

...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언 10년이 지나며 로드맨 문화는 여느 카운트 문화가 그러하듯 소비성이 결부된 대중문화로 탈바꿈된다. 스켑타와 우호적 관계를 다지던 에이셉 라키가 ‘Praise the Lord’ 트랙을 공개하며 그라임과 드릴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패션과 스트리트 문화의 아이콘인 에이셉 크루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스며든 것. 센트럴 씨가 자랑하듯 치골에 걸친 로고 플레이 구찌 스퀘어 백이 이를 증명한다. 센트럴 씨의 앨범 타이틀의 도자가 내가 아는 그 도자 캣이 확실하다는 걸 알았을 때 ‘이게 과연 옳은 걸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가 입은 블루 네온 컬러 트랙 셋업과 깔맞춤한 시크리스털sea-crystal 컬러의 나이키 SB 덩크 로우엔 ‘아, 결국 그도 스타가 되길 원하는구나’로 갈무리 지었다.

니치 성향을 띠는 작은 모든 것이 거대한 대중문화 반열에 오르게 되면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도 이를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훅 밀려오는 아쉬움을 감출 순 없다.

영국에서 응시한 그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본다. 이곳엔 로드맨이 있을까? 혹은 있었을까? ‘애매하다’로 결론의 방점을 미리 찍어본다. 로드맨과 그라임, 드릴 문화의 근간 속 소외 감정에 동조할 순 있다. 인류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를 뿐 감정의 원인은 사람이기에 엇비슷하다. 다만,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기 위한 과격함은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질서나 법칙에 익숙하다. 그 흔한 타투도 방송통신 심의 제도 앞에선 무색하다. 특정 계층을 향한 솔직하고 도발적인 훅의 힙합을 발매하는 순간 가차 없이 모든 음원 스트리밍에서 지워진다. 이들에게 “왜?”라고 묻고 관심을 가지는 쪽은 생각보다 소수다. <쇼미더머니 시즌 11>에 등 장한 드릴 장르 래퍼들은 이야기를 한다기보단 유행으로 드릴과 그라임을 받아들였고. 유행의 영역이기에 텁텁한 검은색 후디, 패딩, 발라클라바, 피티드 트랙 팬츠를 따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카멜레온 같은 방어적 본질의 성격은 이해하지 않은 채.

Text Park Soeun
Art Ha Suim

더 많은 콘텐츠는 <데이즈드> 3월호와 디지털에서 확인하세요. Check out more of our contents in KOREA March print issue and 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