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 ONLY
Text Jong Hyun Lee
Fashion Se Jun Park
Photography Jung Wook Mok
Hair Hye Jin Son
Makeup Jun Sung Lee
Project Director Yeon Hong
SEISHIN 테라노바 다운은 코오롱스포츠(Kolon Sport).
EXPERT 안타티카 오리진(Origin) 다운은 코오롱스포츠(Kolon Sport).
SEISHIN 유니섹스 볼륨 쇼트 다운은 코오롱스포츠(Kolon Sport).
동절 긴기장 포켓 포인트 플리스 재킷은 코오롱스포츠(Kolon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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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길렀네요?
네, <킹덤>이라는 작품을 찍었어요. 사극이라 머리를 기를 수밖에 없더라고요. 20년 만에 앞머리를 길렀어요. 늘 ‘거지 존’이라 부르는 마의 구간을 넘기는 게 힘들어서 잘라왔는데 막상 기르고 보니 제 얼굴이 새로워 보여서 좋아요.
조금 떨리는데….
수다 떠는 거처럼 하세요. 저 그런 거 좋아해요.(웃음)
배두나 씨도 누군가 앞에서 긴장할 때가 있나요?
많죠. 누구를 좋아할 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엄청 떨어요. 특히 팬들요. ‘팬이에요!’ 이러면 바로 긴장하게 돼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내 연기를 보고 좋아한 사람이라면 배우 배두나의 팬일 텐데, 인간 배두나는 다르잖아요. 인간 배두나를 보고 실망하는 게 싫어요.
예능 출연이 뜸한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20년 동안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발버둥쳤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캐릭터가 입혀진 게 편해요. 내 자신으로. 배두나라는 사람으로 예능에 나가는 건 자신이 없어요.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나, 약간 연기를 해야 할까. 어려워요. 하지만 어떤 캐릭터가 되는 건 편해요. 오늘처럼 평소와 다른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만 바꿔도 거기에 맞는 어떤 게 나와요. 저절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눠요?
되게 쓸데없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웃음)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말이라는 게 항상 어렵거든요. 내가 느끼는 것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잖아요. 오해하기도 쉽고요. 그래서 대화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아요. 말주변이 없기도 하고. 말이 제일 어려워요.
지금도 사진을 찍어요?
언제부턴가 내가 찍은 사진이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해 감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흥미를 잃었어요. 말도 내가 생각하는 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느끼면 하기 싫어졌고요. 긴 대사보다 어떤 표정 하나로 충분할 때처럼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이런 배우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건 없어요. 하지만 자신의 분야가 아닌데 월권하는 건 보기 안 좋더라고요. 배우 경험이 많아질수록 경력이 짧은 스태프를 만나면 때론 그들의 방식이 답답해 보일 수 있잖아요. 하지만 각자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은 연출을 하고, 배우는 연기를 하고.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답답하게 느끼지는 않아요. 그런데 요즘 나도 모르게 했던 얘기를 또 하더라고요. 잔소리인 거죠.(웃음) 누군가는 그 이유가 경험이 많아서라고 하던데···. 신경 쓰여요.
본인 행동을 의식하고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네, 의식하고 개선하려고 해요. 배우를 오래하고 싶거든요. 아까 말한 거처럼 저는 어떤 캐릭터가 되어서 연기하고 있을 때 가장 편한데 그 캐릭터가 되려면 나 자신이 순수해야 해요. “배우는 말랑말랑한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 해.” 예전에 윤여정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예요. 크리스마스카드에 선생님처럼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썼더니, “나는 오래 살아서 삶에 대해 많은 걸 알지만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너의 순수하고 풋풋한 마음만으로도 나보다 더 좋은 배우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어떤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있어서 배우의 자아가 너무 크면 연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처를 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겨도 마음을 닫지 않아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처음처럼 아프게 느끼고 싶어요 그게 배우라고 생각해요.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것에. 나이가 들어도.
저도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잘 모르겠어요. 그럴 수가 있나요
저도 그게 안 돼요. 언제나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칭찬을 자주 하나요?
칭찬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 너무 이쁘다!” 이 말 자체에는 하나도 동요되지 않아요. 안 이쁜 거 알아요.(웃음) 하지만 이 말을 함으로써 제 기분이 좋아지게 하고, 자신감 있게 촬영 할 수 있도록 돕는 그들의 마음이 진짜예요. 저는 무조건 칭찬해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애정이면서 정성이니까.
저는 칭찬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표현해야 해요.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웃음) “고마운 마음 백번 갖고 있는 거 소용없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말 안 하면 정말 몰라요.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어요?
칭찬이나 조언을 귀담아 듣는 편이 아니에요. 제 모토가 ‘작은 찬사에 동요하지 말고 큰 비난에 아파하지 말자’예요. ‘나는 칭찬하는 것에 비해 그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헐뜯는 만큼 별로인 사람도 아니야.’ 데뷔 때부터 계속 이 생각으로 살았어요.
세상은 한 번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전 낭만주의자예요. 물론 삶이 힘들죠. 미세먼지조차 많잖아요. 어디로 떠나고 싶을 정도로. 숨 쉬기도 힘든 환경이라는 건 기본권 자체가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날 날씨가 화창하면 그게 참 감사해요. 가끔 시각을 잃는다면 안타까워서 어쩌지 싶을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요. 제가 눈이 나쁘거든요. 그래서 더 고마울 수도 있는데, 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매번 느껴요.
어떤 걸 볼 때 가장 벅찬가요?
누구는 대자연 앞에서 숭고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사람의 정성이 깃든 무언가를 볼 때 벅차요. 인간의 힘으로 해낸 뭔가를 볼 때. 요즘에는 아기들. 너무 신기하고 희한한 존재 같아요. 그걸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게 또 놀랍고. 인간이라는 동물은 날 때부터 똑똑하구나. 인간은 학습하고 교육을 받아서 완성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기들을 보면 인간은 날 때부터 완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카가 이제 대여섯살이에요. 아직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하나의 인격체로서 완성된 것처럼 느끼거든요. 아기들은 예술 작품 같아요. 내가 만약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자랐으면 어땠을까. 훨씬 창의적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지금 아기들이 살아갈 시대는 우리와 전혀 다를 거예요.
지금 시대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아이들이 사는 방식이니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 시대를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해요. 펜을 잡고 종이를 찢어서 글을 쓰고 직접 전하고. 종이의 소중함을 알죠. 저는 지금도 이메일을 프린트해 봐야 하고, 대본도 태블릿으로 보면 연기가 잘 안 돼요. 그걸 아예 몰랐으면 오히려 편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걸 알아서 얼마나 좋은가 생각해요.
배두나의 마흔은 어떨까요?
복합적이에요. 솔직히 말해 굉장히 기대되고 설렌다고 할 수는 없어요. 내가 지금까지 잘해왔나? 이런 걸 되묻는 시기인 거 같아요. 올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되게 강하게 들어요. 방법은 아직 못 찾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많이 갖고 여행도 자주 가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죠. 사람들은 워낙 나이에 집착하니까 나도 ‘뭐 했다고 벌써 마흔이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솔직히 전 아직 똑같거든요. 지금도 철이 없고, 철이 없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래도 반평생을 산 건 맞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잘 살아왔나,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는 시기. 마흔은 그런 시기가 될 것 같아요. 사람이 언제나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칠 수는 없잖아요. 숨 고르기 해야죠.
한 방송에서 나이 먹는 걸 즐긴다고 말했죠.
저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허투루 쓰는 시간은 없다. 내가 남들보다 시간을 더 지나왔다면 내 안에 쌓여 있는 게 더 많을 거야. 예전에 사진 찍을 때도 “배우가 무슨 사진을 찍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는 한 달에 만화책을 300권씩 읽었고요. 엄마가 엄청 야단을 치셨는데, 그 경험들이 지금 연기할 때 제 감수성에 큰 도움을 줘요. 그리고 배우는 나이 먹을수록 좋은 점이 늘어나는 거 같아요. 얼굴에 굴곡이 생기고 흰 머리가 생기고···. 엄청 고뇌하고 스트레스받은 흔적 같잖아요.(웃음) 저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20년 동안 거기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세월의 흔적이 몸에 드러나는 게 치열하게 사는 와중에 얻은 훈장처럼 감사하게 생각해요.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캐릭터나 분량 욕심은 없었어요.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그게 비중이 큰 역할일 수도 있고, 작은 역할일 수도 있죠.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배우로서 오래가는 길이기도 하고.
<킹덤>은 첫 사극 도전이지요?
맞아요. 일단 사극 말투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대에는 여자가 나서거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고증은 따라야 하고. 제가 평소 연기한 여성상이 아니라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제가 해서 원래 대본보다 조금 적극적인 캐릭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그 시절 여자를 연기하는 것에.
촬영 자체도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무엇보다 정말 너무 춥더라고요. 세상에. 포천에서 촬영하는데, 보조 출연자 분들의 덩치가 다들 어마어마해요. 너무 추우니까 패딩 재킷을 의상 안에 입은 거죠. 근데 저는 그럴 수 없잖아요. 히터를 계속 틀어놓는데도 모니터 룸 기온이 영하 12℃더라고요. 제가 원래 다운 재킷을 안 입는데 이번에 처음 입었어요. 코오롱스포츠 안타티카 다운이 없었으면 저는 정말 <킹덤>을 끝까지 찍지 못했을 거예요.(웃음)
10월에 드라마 <최고의 이혼>이 시작되죠?
네, 지금 열심히 촬영 중이에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전에 찍었던 작품을 생각해보고 결정해요. 좀비 사극 <킹덤>을 찍었고, 영화 <마약왕>, <센스 8> 파이널을 찍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가벼운 걸 해보자. 내가 잘 놀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최근 보여주지 않은 캐릭터지만 잘할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최고의 이혼>의 원작자 사카모토 유지의 <마더>를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이건 해야겠다 싶었죠. 재밌을 거 같아요, 정말. 꼭 보세요.(웃음)
늘 뭔가를 배우고 있죠. 요즘엔 뭘 배우는 중인가요?
드라마 때문에 컬링을 배우고 있고, 테니스도 배우고 있어요. 내년에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해요.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연기를 핑계로 공짜로 뭘 배울 수 있는 게 참 좋다고 했는데, 연기보다 배우는 시간이 훨씬 많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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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화보는 <데이즈드> 2018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