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김정현은 상기된 표정으로 전주 곳곳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김정현의 시간

Text Ji Woong Choi 
Fashion Min Ji Kim
Photography Young Min Kim
Hair Hyun Cheol Moon 
Makeup Eun Joo Oh


커팅 디테일의 데님 재킷과 팬츠는 발렌티노(Valentino).

 

화이트 티셔츠는 유니클로(Uniqlo), 데님 팬츠는 김서룡(Kimseoryong), 로고 플레이 데님 재킷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잘 지냈어요?

저희 만난 적 있던가요?(웃음)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요. 거리에서 잠시.

아,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제가 처음 간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였거든요. 전주는 느낌이 좀 다르잖아요. 영화제 공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한 골목에서 다 스치고요. 그런 감각이 너무 좋게 남아 있어요.


그때 정현 씨 상기된 얼굴이 기억나요. 전주 곳곳에 <초인> 포스터를 붙이고 다닌다고 말했죠.

네, 맞아요. 저의 첫 장편 주연작이 <초인>이에요. 당시에 개봉을 앞두고 있었고요. 홍보도 할 겸 전주영화제가 열리는 거리마다 제 얼굴이 크게 나온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어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죠. 서울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제가 포스터를 붙인 자리 다 훑어봤거든요. 눈에 담고 싶어서요. 맞아요. 그때 그랬어요. 생각나네요.


지난 2년간 배우로서 많은 일이 있었죠?

여기 오기 전에 소속사 대표님이랑 커피 마셨는데요, 그냥 이런저런 대화하다가 대표님이 되게 무심하게 “야, 2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 했다. 참 열심히 한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 듣는데 이상한 울림이 있더라고요. 2년 동안 영화, 드라마 합쳐서 열 편 정도 했더라고요. 제가 너무 하고 싶던 일이거든요. 이거,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새삼 행복하다 생각 했어요. 왜냐하면 그걸 잊고 살 때가 많거든요. 가끔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불안하면요. 처음 마음을 잊게 될 때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막연함 같은 건가요?

네, 일하면 막연한 마음이 없을 줄 알았는데요, 전과는 다른 막연함이 있어요. 그게 가장 힘든 것 같기도 해요.

 


쉬지 않고 일했더라고요.

그러게요. 어쨌든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어요. 거짓말이니까요.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참여하는 거 너무 행복하죠. 근데 그것도 일이니까요. 일이라는 게 사람과 부딪혀야 할 때도 있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연기라는 일은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관계 맺는 직업이니까요. 피하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물론 그 바탕에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고요. 지금 말하면서 생각했어요. 잘 지내왔구나. 잘 버텼고, 잘 흘려 보냈구나.

 


왜 그렇게 쉼 없이 일해야 했어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려면 많은 작품에 참여해서 관객과 시청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던 거 같아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 중에는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감정과 느낌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로 하여금 관객 혹은 시청자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운도 좀 따른 편이라고 봐야 할까요?

네, 운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죠. 이 일을 처음 시작한 계기도, 지금 여기까지 흘러온 것도 사실 제가 계획한 건 아니거든요. 물론 저는 늘 최선을 다했고, 소신을 지켜왔어요. 그런 게 잘 뒷받침됐다고 믿어요. 안 그러면 진작에 고꾸라졌을 거예요.

 


올해 스물아홉이죠?

네, 그렇게 됐네요.

 


이제 좀 나아졌어요?

돈 말씀하시는 거죠? 네, 편안해졌어요. 돈이 생기니까 제가 더 풍부해지는 느낌도 들어요. 함께 고생하던 친구 중에 아직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 있거든요. 전에는 우리가 하지 못했던 거, 먹지 못했던 거, 부러워했던 거 이제 다 할 수 있어요. 주로 먹고, 마시는 건데요,(웃음)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을 때 걔네가 좋아하는 거 보면 오히려 제가 고맙죠. 에너지를 받아요.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도 좀 있고요. 그냥 사람 김정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얼마 전에 혼자 홍콩에 다녀왔죠?

여행 다녀왔어요. 아마 올해 전주영화제가 열리던 그즈음인 거 같아요. MBC 드라마 <시간>이라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요, 감독님이 먼저 권유하셨어요. 작품도 중요하고, 촬영도 중요하지만 조금 쉬어가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다 비워내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그런 여유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치 같았어요. 정말 괜찮은 줄 알았죠. 근데 아니었나봐요. 홍콩에 머문 처음 이틀은 밤마다 호텔 방에 앉아서 울었어요. 되게 많이요.

 


그래도 될 것 같은 도시였나요?

모르겠어요.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 왜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까, 사실은 이렇게 좋은데···’라는 생각부터, 그동안 뭐가 많이 쌓였나봐요. 저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 것 같아요. 위로가 많이 된 여행이에요.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건 참 중요한 일 같아요.

맞아요.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많이들 간과하니까요. 다른 언어, 다른 공간, 낯선 호텔 방이 저도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느낌이었어요. 그제야 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고요. 아무튼 셋째 날부터는 혼자 페리도 타고, 사람 구경도 하고, 너무 좋았어요. 서울에 돌아오면 바로 촬영장으로 가야 했는데 불안하기보다는 홀가분했어요.

 


원래는 촬영장 가기 전에 불안해하는 편인가요?

저는 좀 그런 편이에요. 드라마 <시간> 촬영장은 아직까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넉넉하게 찍고 있거든요. 그래서 좀 괜찮지만요. 원래 불면증도 있고, 촬영장에 있는 꿈도 자주 꿔요. 잘해내고 싶은 욕심이 나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비우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완벽한 정답을 만들어서 촬영장에 갔다면, 지금은 공간을 조금 비워놔요. 그게 더 좋더라고요.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인가요?

냉정하다고 하면 좀 그렇고, 매몰찬 거 같긴 해요. 저 자신에게요. 슬플 때 돌보지 않고, 외로울 때 바라보지 않았어요. 지금은 이 삶 자체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시간>은 어때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던데.

공중파 프라임 시간 첫 주연은 아니지만요, 성인이 되어서 처음 주연을 맡았으니 중요하죠. 기대도 되고 욕심도 나요. 근데 본질적인 건 늘 같아요.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선택을 하는지 고민하는 거요. 그 인물을 충실히 연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요. 뻔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 잘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하지만 잘 이겨내야죠. 그런 마음을 차곡차곡 잘 쌓아두면 단단한 벽이 될 거라 믿어요. 그 벽이 저를 지켜줄 거라고요.

 


현명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가요? 그냥 감정에 충실한 건 어때요?

저는 기본적으로 되게 많이 부족한 사람이거든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데 감정이 앞설 때가 더 많죠. 그냥 나를 잘 알고 싶은 거예요. 현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요.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제가 바라는 이상향을 계속 선언하는 거죠. 그래야 그 근처라도 갈 수 있을 테니까요.

 


2년 전 전주에서 스친 정현 씨 얼굴을 왜 잊지 못한 줄 알아요? 얼굴에 어떤 열망이 가득했기 때문이에요.

여전하죠. 저는 배우로 사는 게 좋거든요.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고요. 제 연기, 제 작품을 보는 분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열망도 가득하고요. 저는요 지금 되게 큰 행복과 책임감을 함께 느껴요. 그 무게를 잘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