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이 이끄는, 안내하는, 정확하고 직접적인 스물여덟 번째 세계.

MIU MIU WOMEN’S TALES : INTERVIEW with Laura Citarella

 

트렁크 안에 미우미우 두어 벌을 싣고 도착한 곳은 베니스였다.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Miu Miu Women’s Tales’의 스물여덟 번째 시리즈가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에서 공개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를 위해 미우미우가 지명한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라우라 시타렐라. 제작 기간만 6년, 러닝타임은 무려 4시간에 이르는 그의 영화 <트렌케 라우켄Trenque Lauquen>(2022)은 미스터리를 품고 사라진 한 여성과 이를 뒤쫓는 두 남성의 이야기다.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영화는 알 길 없는 곳으로 방랑하다 해방의 차원에 이르고, 이 영화의 모든 구석은 지난 2년간 전 세계 영화인이 ‘풀고 싶은, 그러나 종내 풀지 못한’ 문제 중 하나였음을, 이 영화의 특별한 이력이 암시한다. 영화는 2022년 실험성과 독자성에 목적을 둔 베니스 국제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초청과 더불어 2023년 프랑스 영화평론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그해 최고의 영화에 선정된다. ‘동시대 영화’의 한 축으로 인정받은 라우라 시타렐라와, 그를 향한 미우미우의 러브콜과 그 결과까지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그런 비장한 마음을 먹고 베니스에 머문 4일.

첫날 도착한 호텔 방엔 미우미우의 핑크색 무가지가 보란듯이 놓여 있었다. 그걸 한 장 한 장 넘기던 장면부터 기억난다. 조이 카사베티스Zoe Cassavetes 가 감독한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첫 번째 시리즈부터 지난 탄 추이 무이Tan Chui Mui의 작품까지, 2011년부터 시작해 이렇게나 겹겹이 쌓인 시간과 기록물, 각자의 이야기 앞에서 무작정 탄성부터 나왔다. 이제 그 스물여덟 번째 영화가 공개되기 전이라니. 33℃를 웃도는 날씨의 베니스는 몹시 뜨거웠다.

영화 초연 전 마련된 두 번의 프라이빗 디너 자리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과연 어떤 ‘세계’였다. 여성이 여성으로 자유롭게 호명되고 나설 수 있으며, 일말의 편견 없이 툭툭 오가는 발언이 존재하며, 이 자리에 모인 감독, 배우, 프로듀서,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들의 고개만큼 떳떳하고 확고한 신념이 한데 모여 있는 세계.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세계. 게다가 하릴없는 다정함. 그걸 모두 지켜보며, 그 자리를 지키며 나 홀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동화됐던 순간순간.

기어코 공개된 라우라 시타렐라의 'EL AFFAIRE MIU MIU'로 엄숙했던 극장 안과 화면 속엔 소동극처럼 이따금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영화는 또다시 한 여성의 실종 사건에서 시작되고, 이를 세 명의 여성이 뒤따른다. 단서는 영화 속 이들이 입은 미우미우 컬렉션뿐이다.

 

INTERVIEW with Laura Citarella

베니스 한복판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그것도 미우미우가 주최하는 행사로.
무척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조금 이른 아침인 것만 빼고는.(웃음) 아이들과 남편은 아직 호텔 방에서 자고 있다.

이렇게 아침에 만날 줄 몰랐다고 정정하겠다.(웃음)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 스물여덟 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선정됐고, 지난 8월 31일에 베니스에서 'EL AFFAIRE MIU MIU' 초연을 마쳤다. 베니스는 전작 <트렌케 라우켄>으로 감독이 오리종티 경쟁 부문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사실 직전에 베니스에 왔을 때, 다시 오기 힘들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단편 'EL AFFAIRE MIU MIU'를 통해 다시 베니스를 찾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뜻깊다. 내 방식대로 이 단편 필름을 마무리 지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좋았던 건 이번 필름을 찍으면서 다음 작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나의 전작과 차기작 사이에 놓인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작 <트렌케 라우켄>과 동일한 배경이 돋보였다.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엔 나 자신조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다. 그러다 내가 6년간 골몰한 ‘트렌케 라우켄’이라는 세계와, 미우미우라는 세계가 잘 섞이길 바랐다. 내가 잘 모르는 미우미우를 내가 잘 아는 세계로 어떻게 가져오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모든 것이 미지수였지만, 결국 해냈다. 굉장히 특별하고, 평범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범하다. 마치 퓨전 같네.(웃음)

감독이 6년간 골몰한 트렌케 라우켄은 실제 아르헨티나의 지명이기도 하다. 각별한 곳인가?
무척이나. 난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남편과 내 가족의 고향이고, 그 덕분에 여름 휴가철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내 고향보다도 정감이 더 많이 간다. 남편은 트렌케 라우켄을 두고 ‘여름철 찰나의 사랑’ 같은 곳이라고도 했다.(웃음) 트렌케 라우켄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그곳만의 특별한 리듬이 있다. 게다가 그곳만의 노을과 빛, 광활한 지평선 등 고유한 특성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떤 앵글로 어떻게 ‘재발견’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낯설다면 낯선 그곳에서 미우미우가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미우미우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배경이고.
내가 설정한 여러 소재가 하나의 영화에서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나에게 영화는 일종의 매개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 시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는데, 당시 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작품을 제작하며 그 시인에 대해, 그 시와 캐릭터에 대해 영화를 통해 찾게 되었다. 소재에 대한 연구는 영화 제작의 실마리다. 이 영화에서 표현된 미우미우는 이제껏 패션산업에서 보여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미우미우와 시골스러운 배경을 붙여보는 일은 굉장히 재밌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없을 법한 일이지 않은가?(웃음) 하지만 영화이기에 이런 재밌고,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삶의 한 버전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에서 타당성 혹은 자연스러움은 어디서 찾았나.
어느 하나 자연스럽거나 선천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영화 이전엔 미우미우와 아르헨티나, 미우미우와 트렌케 라우켄은 어떤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는 미우미우가 없다. 다만 이 영화 자체에서 그 연결성이 묻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다양하고도 개성 있는 미우미우 컬렉션을 입히면서 우리의 세상과 미우미우가 연결됐다고 느꼈다. 미우미우를 여성의 관점과 가치로 바라보는 일과, 내가 감독으로서 영화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태도와 시선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표면적으로 미우미우가 드러난 것 외에도 미우미우가 갖고 있는 디자인 철학 등 그 뒷이야기에 더 초점을 두고 봐주었으면 한다.

캐릭터 구성에서 어떤 태도와 관점이 유효했는지 궁금하다. 미우미우를 입은 여성들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행동을 보일지 예상했나.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고 상정하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진 않았다. 내게 중요했던 건, 단지 그 옷을 입은 여성들의 ‘가능성’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영화나 실험이라고 부르는 몇몇 작품에서 여성의 초상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여성이면서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라우라 파레즈를 예로 들자면, 그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챙기지만 자신이 엄마라는 존재임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 덕분에 어떤 일이든지 부딪히려고 한다. 늦은 밤까지 형사로서 수사를 하는 것처럼 라우라 파레즈가 행하는 모든 일은 자신이 그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고, 한편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내 모든 작품에서의 여성상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맡았든지 간에 뭐든 당신의 가능성이라는 것.

그 대범함 때문에 극장에서 자주 웃음이 났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트렌케 라우켄>의 첫 챕터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The Adventure’ 였지?
맞다. 그 첫 챕터에 이번 영화에 대한 실마리가 있다. 우선 내게 영화 제작은 항상 하나의 모험이고, 난 그 모험을 즐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선 'EL AFFAIRE MIU MIU'의 등장인물이 그들만의 모험을 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세 명의 여성은 사라진 모델을 찾아 헤매며 미우미우의 옷들을 입고 또 찾으며 수사를 이어간다. 그러다 더 멀리 교외에까지 나가기도 하고. 비록 어떤 추리는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될지라도, 계속해서 모험을 해나간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모험’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들은 그리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일이 아니다. 단지 즐기기 바빴던 우리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아주 자연스럽다.

대부분 우먼스 테일 시리즈 영화는 러닝타임이 20분 남짓이다. 영화 시작 전, 감독이 이번 영화 러닝타임을 어떻게 잡았을지 가장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전작이 무려 4시간에 달하지 않았나.
내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곧 내 생각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사실 힘들다.(웃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줄이지 않되 시간만을 줄이는 건 역시나 내게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런 제한 사항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후회는 없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거나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왔을 거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촬영해 본 것. 모든 것이 내게 큰 배움이었다. 

아르헨티나 영화 제작 단체 ‘엘팜페로시네’의 일원으로서 활발하게 작업 중이다. 이들이 만드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 끝이 쉽게 가늠되지도 않고, 쉽게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14시간에 이르는 <라 플로르>는 전 세계발 ‘숏폼’에 전염된 한국 관객에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숏폼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일단 감독으로서 큰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닐까. 사람들은 짧고도 빠른 소재로 매일매일 뭔가 담아내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한편 매일 그렇게 소비되는 소재들이 점점 그 자체로 힘을 잃어가는 걸 목격하고 있다.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보여지고, 몇 초 혹은 몇십 초 가량 되는 찰나의 순간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사라진다는 점은 기억 속에 오래 남길 원하는 우리에게 영화의 큰 위기로 여겨진다. 확실하게 이 문제를 문제로 제기하거나 해결할 수 없지만, 영화업계엔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에서 나를 포함한 엘팜페로시네 감독들은 영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숏폼 이전 시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신의 영화를 비롯해 엘팜페로시네의 영화는 영화이면서 때로는 삶의 원형처럼 체감되기도 한다. 픽션과 현실이라는 상이한 세계가 병치되는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고. 라우라 시타렐라에게 픽션은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가. 그 둘을 구분하는가.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글을 쓰더라도 언어와 문학을 위해 쓰는 것이지, 삶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의가 있다. 나는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내가 겪는 생활에서의 어려움과 나와 이웃이 겪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작업에서 항상 이런 관심이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에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픽션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인가. 
현실과는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트렌케 라우켄> 촬영 당시, 영화 내에서 라우라 파레즈가 임신했던 것처럼 실제 나는 임신 중이었다. 어쩌면 이 작품을 통해 임신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임신한 나 자신이 아닌, 임신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영화에서 드러내고 싶었다. 여기서 엘팜페로시네가 픽션과 현실을 다루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영화엔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 영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담겨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든다’라고 했을 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곧장 달려간다면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아주 동떨어질 것이다. 현실 그대로보다 그 주제를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취할 때 영화는 더욱 현실에 가까워진다.

들뢰즈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거라고 했다지. 당신의 영화는 어쩌면 또 다른 ‘현실’을 제안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영화와도, 패션과도 꽤나 부합하는 대목같다. <트렌케 라우켄>과 미우미우에도.
늘 두 가지 이상의 소재를 생각하는 이유다. 삶이 단 하나의 현실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상기한다. 현실은 삶 속 여러가지가 융합된 것이니까.

 

 

국내의 한 영화평론가가 이미 운을 뗀 적이 있다. “향후 몇십 년을 내다보는 영화 용어 사전이 새로 발간된다면, ‘여성 영화’ 항목은 과연 어떤 규정들로 다시 설명될 수 있을까.” 여성 영화에 대한 명징하고 미학적인 몇 가지 표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능동적으로’, ‘대항적으로’, ‘전복적으로’ 등등. 어딘지 앞장서서 주먹을 꽉 쥐고 있을 것만 같은 표현들. 틀리지 않았지만 구태의연한 나열의 연속이다. ‘여성 제작’, ‘여성 출연’, ‘여성 관객’, 박수!’ 거기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초연 후 이어진 이틀 간의 컨퍼런스에서 끝없었던 여성과 창작에 대한 토의가 이를 증명했다. 삶에 관한 아주 사적인 질문과 열망에 의해 툭 탄생한, 본 적 없는 여성 캐릭터들. ‘여성’에 대해 자주 묻지만 여성을 함부로 정의하려 들지 않는 영화의 태도들. 그러고 보면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오른쪽에서 터진 웃음이 저 왼편으로까지 이어지던, 쉼 없는 실소 파도타기로 가득했던 리도섬의 한 극장에서 느낀 기분을 아직 무어라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아주 유연하고 자유로운 일종의 ‘참여’ 같기도 했으니까. 농담 같은 논쟁. 논쟁 같은 농담. 생각해 보면 미우미우의 미학은 어떤 ‘고상함’을 타파하는 것으로부터 그 지성 과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것이 아닐는지. 인종과 나라, 나이 그 어느 것도 같지 않은 여자들이 가득한 세계 속에 놓여 있던 아름답고 이상한 시간들. 미우미우의 유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마침 모였던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에서, 모든 영화와 세상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Text & Photography 소히(Sohee, 권소희)
Art 던(Dawn, 위다함)
Courtsey of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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