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버리는 순간. 김혜준에게 펼쳐진 환한 길.

ONE CLEAR MOMENT

 


레드 톱과 레이스 툴 포인트 스커트는 하이츄(Hayiichu), 레드 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톱과 스커트, 슈즈는 모두 하이츄(Hayiichu), 뱅글은 엠엠더블유디(MMWD), 레그 워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모자는 하이츄(Hayiichu).


블랙 레이스 디테일 원피스와 타이츠, 패턴 글러브는 모두 에트로(Etro), 블랙 힐은 지미추(Jimmy Choo), 링은 엠엠더블유디(MMWD).


블랙 레더 재킷과 데님 팬츠는 로크(Rokh), 네크리스는 엠엠더블유디(MMWD), 퍼 슈즈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바깥엔 흰 눈이 온통 쌓였네요.
맞아요. (음료를 쥐며)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모카 빠진 화이트 초코 모카! 그런데 진짜 어떻게 아셨어요? 이 조합을.

유튜브에서 Q&A 하던 걸 열심히 봤거든요.
완벽한 조합입니다. 눈 오는 날 실내에서 마시니 더 좋아요.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까 사진가에게도 새해 다짐 물어본 것 같던데.
제가 올해 딱 서른이 됐거든요. 근데 ‘서른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대요. 30대가 되면서 20대 때 불규칙했던 생활, 망가진 습관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죠. 제가 연말연시에 고되게 앓았거든요. 올해는 좀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어른들이 ‘사람이 잘 때 자고, 먹을 때 딱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하시잖아요.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 말만 들어도 장수하겠구나.

장수하고 싶어요?
큰 욕심은 없는데,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연명은 의미가 없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대화죠?(웃음)

그러게요. 만 나이가 아닌 걸로 서른 살인 거죠? 요즘은 다들 만 나이로 말하던데, 서른이 새삼 크게 와닿나 봐요.
저는 예전엔 나이 드는 게 되게 싫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서른을 앞둬 보니 기대되는 게 있더라고요. 더 달라지지 않을까, 더 멋있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어떤 무언가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드는 건 왜 싫었어요?
그냥 어린 마음에요. 제 에너지가 너무너무 밝고, 끓어오르고 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점차 시니컬해지는 걸 보면서 ‘나는 끝까지 해맑아야지!’했는데(웃음). 근데 선배들이 옳은 길을 가고 계셨던 거였어요. 제가 겪어보니, 에너지가 죽었다기보다는 차분해지는 걸 수도 있고, 정도를 아는 걸 수도 있고. 지금은 지금 나이대가 좋아요.

차분한 나름대로의 그 에너지가 있잖아요. 침착하고 안정적이고.
맞아요. 차분한 사람과 대화할 때 저도 그 안정적인 에너지를 느껴요.

지금은 어때요? 인터뷰를 어려워하진 않나 봐요.
좋아요. 저는 이런 대화 나누는 거 좋아해요.

어려운 건 없어요?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항상 이렇게 대화하듯 이야기 나눠주시니까요. 걱정이 되긴 해요. 지금은 제가 이렇게 대답하고, 다른 인터뷰를 할 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이나 가치관은 정말 한 시간 만에, 하루 만에, 몇 달 만에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김혜준은 이랬다 저랬다 하네’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 고민을 좀 하던 때가 있는데, 그 또한 나라고 생각하니까 이젠 크게 부담되진 않아요. 저도 똑같이 미완성인 사람이잖아요.

언제든, 또 쉽사리 바뀔 수 있다고 열어두네요.
장점이자 단점인데, 저는 어떤 사람과 대화만 해도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가끔은 또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좀 더 명확하게 해두고 싶을 때가 있긴 해요. 그런 게 없으니까 혼자 ‘나는 내가 없나?’ 고민하기도 하고요.

지금 여기서 거창하지 않은 거, 하나라도 명확하게 해볼까요.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저는, 저는, (혼잣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저는 재밌는 사람입니다.(웃음) 그런 유머러스한 재미 말고, 저는 제가 봤을 때 되게 다양한 모습이 있거든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저랬다가 이랬다가. 제가 느낄 때는 이 기복이 무척 심해요.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요.

김혜준으로 살아가기는 참 재밌다?
네, 맞아요. 심심하진 않아요. 작은 일 앞에선 크게 생각하고 막 ‘어떡하지’ 주저하면서, 큰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덤덤하고요.

...

최근에 영화 만드는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정말 많은 작품이 쏟아지잖아요. 결국 자신은 수십, 수백만 작품 중 하나를 만드는 건데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멋없는 대답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의미를 찾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나는 이 우주에서 먼지 한 톨일 뿐이잖아요. 그럼 나는 무의미한 존재인가, 생각했을 때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우주를 이루는 거니까요. 저는 그 먼지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큰 의미를 두고, 어떤 족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저는 제가 의미 있다고 여기면 다 의미 있거든요. 제 선택한 작품 중 사실 대중적으로는 잘 안 된 작품도 있어요. 분명히 있는데, 그렇다면 의미가 없을까, 했을 때 거기서 얻은 게 분명 있어요. 그렇게 얻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 작품을 들어갔을 때 ‘전 작품 보고 연락드렸어요’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현명하네요. 요즘은 뭐가 제일 어려워요?
요즘이요, 새로운 부담감을 떨쳐내는 거요. 시기가 다 맞물린 것 같아요. <킬러들의 쇼핑몰>이 공개되기 직전이기도 하고, 다음 작품을 들어가기 전 단계이기도 하고, 서른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니까요. 매번 작품이 끝나는 동시에 걱정이 몰려오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어떻게 잘하고 싶어요?
배우를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요. 제게 평가의 기준이나 잣대가 높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한계를 넓히고 싶어요. 제 자신이 더 과감해지길 바라요. 왠지 그럴 것 같지만요.(웃음)

 

Text Kwon Sohee
Fashion Kim Seha
Photography Kim Yeongjun
Art Ha Suim
Hair E Z (ODD)
Makeup Kim Yu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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