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단단한 기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하는 작가에게 늘 묻는다. 소감이 어떤지.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국 미술계에 관심이 많기에 이 공간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이름에 기댄 곁다리 공간이 아닌 한국 미술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미술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도 의미지만 공간의 특수성과 한계를 말하는 작가도 많더라.
그건 또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물의 평면도만 보면 반듯한 대칭 구조이긴한데 그걸 다 사용하긴 어렵다는 점이 애매하기도 하다. 이 공간엔 기둥이 있지않나.내 경우 부차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기둥을 주요소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2개의 조각과 2개의 영상 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시장 기둥을 거점삼아 작품을 설치하고 동선을 구상했다.
오프닝 날 지하로 내려오는 길, 깜깜한 전시 공간에 놓인 조각과 빛과 몸이 함께하는 영상, 샴페인을 앞에 두고 알거나 모르는 이들이 모여 얕은 사교를 하는 풍경까지. 좋아하는 이태원의 게이 클럽과 교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잘 느낀 것 같다. 나는 전시를 꾸릴 때 그 공간을 나만의 성소로 꾸미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와 게이 클럽을 하나로 융합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영상 작업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가 함께하는 구성이다 보니 공간에 스며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거나 게이 클럽에 가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신적, 육체적 안녕을 위함이니까. 두 공간의 근본적 역할은 같다고 본다.
우선 조각 작품 ‘내 커다란 기대’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개인적으로 그걸 보자마자 혼자 터지듯 웃긴 했는데.
독일인이 유별나게 사랑하는 채소인 슈파르겔(하얀 아스파라거스)을 나무로 조각해 상단 끝부분을 세례자 성 요한의 얼굴, 즉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애매모 호한 표정을 띤 얼굴로 변형시켰다. 독일 슈퍼마켓에서는 보통 슈파르겔 여러 개를 고무줄로 묶어서 판매하는데, 이 고무줄을 철재 고리로 바꾸고 그 안에 슈파르겔 2개만 남긴 형태로 제작했다. 이걸 적정한 눈높이에 맞게 벽에 걸면 십자가 모양이 나타난다. 재미있는 게, 슈파르겔은 보통 매년 4월 수확을 시작해 6월 24일에 마친다고 한다. 공교롭게 이날은 절기상 하지이자 기독교 기념일상 세례자 성 요한 축일아다. 독일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적 이념,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숭앙하듯이 슈파르겔에 찬사를 보내는데, 그 모습이 흥미로워 작업하게 됐다. 먹어보면 몽글몽글한 것이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오면서 찾아봤는데, 마켓컬리와 쿠팡에서 팔긴 하더라.
아, 진짜? 그건 몰랐다.
우뚝 솟은 기둥 두 개는 버젓이 남근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귀두가 있어야 할 곳에 고통받는 순례자의 얼굴이 박힌 셈이다.
사실 슈파르겔은 누가 봐도 남근과 유사한 모양이라서 일부 독일 방언에서는 남자 성기를 칭하는 은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성인의 얼굴은 여러 전통 성화를 참조한 것인데 죽음에 이르는 순간은 고통이 맞지만 동시에 신에게 더 가까워진다는 의미에서 환희의 순간으로 해석된다. 아주 오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인데, 그건 신앙뿐 아니라 어떤 다른 욕망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교회나 성당의 성수대에 젖꼭지가 돋보이는 작업 ‘탐’은 또 어떤가. 그 의도와 시도가 발칙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혼자 또 웃었다.
대리석 성수대 안에 한쪽 가슴을 본뜬 조형물을 담은 작업이다. 여러 성화, 성상을 감상하던 중 여성 성인이 순례당한 방식 중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부각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성 아가타는 양쪽 가슴이 무쇠 집게발에 의해 찢겨 나가는 고문을 당했는데, 아직까지도 이 성인을 기리는 축일이 되면 마을 아이들이 그 장면을 재연하거나 절단된 여성의 가슴을 본떠 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문화라는 이름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 이는 가부장적 욕망이 섞인 이성애자 남성의 권위적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남성 성인의 순교 방식 중에는 신체를 성적으로 부각한 경우가 전무하다. 그런 이유로 전통적 관점에서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남성의 젖꼭지를 주제로 삼았다. 성수대에 놓인 남성의 젖꼭지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이를 탐스럽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수자의 시선에 권위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이토록 퀴어한 작업에 기독교를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종교 없이 자랐지만, 한국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기독교와 아주 가깝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좋든 싫든어떤 형태로든 기독교라는 정보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전인 2014년 처음으로 신촌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나갔는데 반동성애, 탈동성애를 주장하는 보수 개신교 단체가 행사를 훼방놓아 몇 시간씩 대치하는 상황에 놓였다. 온갖 감정이 다 들었다. 너무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는데, 막 울며불며 죽을 듯이 저주를 퍼붓더라. 충격을 받았고, 분노가 끓어오르고 슬프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과 저주의 말로 도배된 전단지를 마주하고 그들이 이토록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가며 소수자를 폄훼하는 논리 아닌 논리가 궁금해졌다. 탈동성애 단체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메시지가 담긴 선전물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작가로서 내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두 개의 영상 작품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와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가 있다. 연작처럼 보인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 전반이 영상에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퀴어 신체를 창의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댄스 퍼 포먼스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역사상 거의 모든 구조나 체계나 건축은 이성애를 기준으로 구축된 것들이다. 퀴어 신체는 그에 맞도록 자신을 각색하거나 자신에게 맞도록 그 틀을 변형시키는 일이었기에 주변 환경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개라고 생각했다. 그걸 시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용에 있다고 봤다. 필름 연작에서는 매우 상이한 조건들이 제시되고, 그 안에서 퀴어 신체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예리하게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무용을 통해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우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
퀴어 신체를 내보이며 특히 이미지와 사운드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평소 뭘 듣거나 보는지 궁금하던데.
유튜브를 통해 이것저것 많이 보고 듣고 한다. K-팝도 많이 찾아 듣는다. 뉴진스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젊은 작가든 기성 작가든 가장 중요한 건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의미 에선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싸움이기도 하니까.
개인의 성향마다 다르게 와닿는 문제인 것 같다. 아, 앞 질문에 좀 추가하자면, 요즘 DJ 예지와 에드바르의 음악을 듣는다. 나는 반복적인 요소가 있어야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을 위해 여러 도시를 넘나드는 널뛰는 일정이지만, 그 반복이 주는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워낙 그런 성향의 사람이기도 하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건데, 내 영상 작업의 규모가 좀 큰 편에 속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보통 1~2년 가까이 걸린다. 그러니까 이번 전시에도 2021년에 만든 작품과 올해 만든 작품이 함께한다. 이렇게 앉아서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내 머릿속은 내년에 만들 다음 프로젝트를 향해 있다. 어떻게 만들지, 제작 지원금은 어디서 끌어들일지, 찍고 싶은 장소의 촬영 허가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그런 고민을 헤쳐나가기 바쁘다. 현실은 당연히 현재를 살아가지만 늘 내가 만들어놓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다. 우리 삶이 다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불현듯 궁금하다. 베를린으로 떠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사랑 때문에. 파트너와 함께 지내기 위해 선택한 거다. 그게 전부다.
사랑만 보고 떠난 베를린에서 작가가 됐고,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마쳤다.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공항에 간다고 들었다. 집으로 가는건가.
내년에 시드니에서 전시를 하는데, 관련한 일을 정리하기 위해 시드니에 간다. 일은해야하니까. 아, 우선 점찍어둔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가로수길부터 가야겠다.
Text Choi Jiwoong
Art Lee Sang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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