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서울’이 무어든 휩쓸어버릴 것만 같았던 늦여름과 초가을 어느 날. 왁자지껄 ‘프리즈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 떨어져 듣고 본, 트렌드에 대항하듯 펼쳐지던 ‘조용한 아트’라는 럭셔리.

Quiet Art

Text Kwon Sohee

작품들을 보니 작가가 무척이나 명확할 거라는 느낌이 왔다. 색과 선의 형태가 하나도 모호하지 않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나는 확실히 색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단어와 색을 결합하는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 개념이 있다. 나는 색과 색의 잔상을 볼 수 있는 공감각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능력은 감정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것 같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일 수 있다. 사안에 대한 입장이나 답을 정해야 할 때면 어떤 편인가.
우선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상학적으로 보면 회화는 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회화는 최종 이미지가 될 수 없다고생각한다. 의미, 해석 심지어 맥락도 항상 변화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회화 작품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내가 예술 작업을 하는 데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이다. 무언가를 콕 집어 말할 수 없으나 표면은 믿을 수 없다는 것, 표면은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미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내 작업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술이 아닌 정치철학과 기호학을 공부했다. 이력이 특이하다.
음, 조금 특이할 수 있다. 나는 그저 흥미로운 과목을 찾아들은 것뿐인데, 자연스럽게 전공이 그렇게 정해졌다.(웃음) 나는 항상 사회계약론같이 철학의 더 정치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수업을 들었더니 어느새 명백히 철학 전공자라고 할 만큼 많은 수업을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호학은 정치철학을 공부한 다음, 브라운대학교에서 전공했다. 내가 볼 때 그 학과가 학교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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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제목이 ‘솔방울과 기업Pinecones and Corporations’이라고 들었다. 자연과 도시를 유기체라는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다. 비관적이지 않아 눈길이 가는 점도 있다. 
내게 부정적인 것을 상상하는 일은 매우 낙관적인 행위다. 변증법 방식을 취하는 것인데, 어떤 주제를 다루고 관여함으로써 어떤 움직임과 변화가 일어나면 어느 순 간 독점으로 보이는 것이 예전만큼 강력하지 않게 된다. 권력이 이렇게나 유연하고 변화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변화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권력이 초월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무지갯빛 같은 특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낙관적인 입장이지?(웃음)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문화를 믿는다. 내가 2018년 베이징 UCCA에서 그린 거대한 벽화 하나가 있다. ‘사회는 추상적이고, 문화는 구체적이다Society is Abstract, Culture is Conc rete’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내 가치관이 많이 담겨 있다. 글쓰기, 음악, 영화, 코미디 등 예술과 아이디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항, 변화, 인간과 세계의 의미와 주체성을 도출하는 어떤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는 그만큼 구체적이다. 나의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기도 하고.



어제 소주를 좀 마셨다고 들었다.
소주를 무척 좋아한다. 지난 내한 때 처음 마셔봤다. 돌아가서도 생각나더라.

독했을 텐데, 입에 맞나 보다.
소주는 나와 한국의 접점이기도 하다. 머무르던 곳을 떠나와 새로운 장소와 의미 있는 연결점을 찾는 건 내게 쉬운일이 아닌데, 소주가 그렇다. 내작업을 단순히 한국에 가져와 보여주기만 한다고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소주를 좋아하는 건 한국과의 의미 있는 연결이다.(웃음)

올해가 두 번째 내한이다. 어떤가.
나는 고향에 엄청난 대가족이 있다. 아버지 쪽으로 고모, 삼촌이 15명 있고, 어머니 쪽으로도 13명 정도가 있고, 다들 자녀도 있다. 한국도 이런 대가족 문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번 내한 때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모님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따스함을 느끼고 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과 익숙함이라 신기하다.(웃음)

가만 이야기를 들으니 공통된 연결점을 찾아가는 일이 작가에겐 중요해 보인다.
말한 그대로다. 많은 예술 작품이 사람 간 차이와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내 작업은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번 <DO AND BE> 전시는 궁극적으로 ‘공통적인 인간의 경험’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비슷하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주 단순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주제다.

우주가 주요한 배경인 것도 ‘연결’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관한 호기심은 모든 창작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동굴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작품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이 진화해온 과정과 예술창작은 근본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 같다. 이 모든연결성을 아우르기에 가장 좋은 소재가 우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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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에 따라 오늘날 기록은 남겨지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한다. 막연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가치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치 대통령에게 해야할 것 같은 질문이다.(웃음)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지금의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화된 상업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에티오피아의 산속 깊은 곳에 살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그런 점에서 ‘가치’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외부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가치를 넘어서는 것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네트워크의 차원 그 이상의 것이다. 그 균형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같다.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었다. 지난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꼭 다시 오고 싶더라.

그새 한국의 미술 시장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당신의 개인전이 열리는 오늘, 서울은 프리즈로 한창 떠들썩하다.
알고 있다. 이번에 한국으로 개인전을 하러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하더라. 한국의 미술 시장은 이제 모두가 참여하고 싶어 하는 장이 된 것 같다. 코로나19 여파로 미국의 미술 시장은 크게 위축된 와중에, 내 작품이 유일하게 판매된 곳은 이곳 한국의 더페이지갤러리를 통해서였다. 내 입장에서는 한국이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웃음) 그때 한국 미술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한국에서의 인기가 상당하다. 인기 요인에 대해 작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웃음) 나는 물질 세계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개별적으로 두지 않고 막 섞고 합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까다로운 물성과 순한 물성, 천연 원료와 합성 원료같이 전혀 다른 것으로 작업을 하면 괜히 부조화스럽고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 든다. 이런 점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잘 녹아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서울도 그만큼 다양한 것이 규칙 없이 혼재되어 있지 않은가. 이번 나의 개인전을 보면 공중에 화살표들이 여기저기 난잡하게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 거다.

서울을 무척 잘 파악했다. 이번 개인전 <Glancing Blows>는 그 이름부터 추상적이고 순간적이다.
‘Glancing Blows’라는 이름을 생각하며 ‘스치는 정도’로 가볍게 무언가 와닿기를 바랐다. 한 가지 철학이나 메시지보다는 다양한 테마를 전달하고 싶었다. 공예 작품부터 미디어 작품까지 한곳에 섞어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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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꼭 미술관이 아닌 고물상이나 벼룩시장에 놓여 있어도 재밌을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프리즈 서울이 한창인 지금,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품이 어디에 전시되어 있느냐에 주목하기보다 작품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미술 시장이 몸집을 키우는 와중에 많은 이가 그런 순수한 마음을 잊거나 잃은 것 같아 보인다. 가령 벼룩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만났을 때, 내가 그 물건이 필요했던 건 아니더라도 그 물건 자체에서 풍기는 에너지 때문에 강하게 매료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순간 자체가 경이롭고 중요한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벼룩시장에 내 작품을 내놓겠다는 말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좀 더 작품의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방금 한 말이 반드시 갤러리를 통해서만 작품을 팔겠다는 말이 된 것 같네.(웃음)



화이트 큐브의 희고 흰 벽에 걸린 당신의 화려한 작업에 당연히 눈길이 가더라.
오늘 개관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탐색하고 있는 ‘동시 대적이고 영적인 꿈’에 관한 이미지다. 나는 팝 스타에 대해 대중이 열광하고 헌 신하는 모습이 종교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이 내가 말하는 동시대적 이고 종교적인 주제인데, 그런 주제에서 오늘 화려함과 매력이 있는 작품을 선보 이고 있다.

당신이 영적이라고 여기는 동시대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간단하다. 말한 것처럼 우리가 팝 스타에게 열광하거나, 영화를 보고 고양되거나, 콘서트를 보고 전율하거나 하는 일들이 나는 이 시대의 영적인 경험이라고 생각 한다. 옛날 인류들이 신에게 종교적 숭배를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류에겐 그런 숭배와 헌신 그리고 몰입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점을 내 작품을 통해 일깨워주고 싶다.

작가는 신을 믿는가.
사실 나는 무신론자다.(웃음) 그렇기에 이런 영적인 현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K-팝과 그 현상들이 연상된다.
빛에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작품에서 빛은 가장 중요한데, 아마 K-팝도 그렇고 빛은 대중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빛은 무대에서 특정 방식으로 사용되고, 퍼포머를 조명하며, 그 모든 것을 관객의 눈에 보이게 한다. 한편 과거 회화 양식이나 고대부터 이어지는 인간 행동 양식 등 빛과 관련된 패턴 은 시간을 초월한다. 그런 면에서 K-팝 또한 과거에서 연결되는 어떤 문화적 현상 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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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품 속 그 빛이 발산하거나 빨려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모종의 모호함을 안긴다.
오늘 전시 중인 작품 중 ‘Entheos’가 특히 그렇다. 이. 이미지는 1970년대 영화 속 가톨릭의 성찬식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그릴때 이 장면을 모호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성찬식이라는 종교적 의식 자체는 순수함의 결정체 같지만 한편으로는 에로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이미지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파괴하진 않지만, 마치 무너지기 직전 같은 어떤 ‘상태’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중첩된 작품도 있다.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시퀀스와 내 작품 속 중첩된 이미지는 많은 연관이 있다. 앞에 드러난 이미 지와 뒤에 가려진 이미지 사이에는 반대와 갈등의 요소가 있다. 다층적 이유가 있지만 나는 이 중첩으로 하여금 이미지 간 깊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식 으로 관객의 눈을 통해 어떤 실험을 하는 거다.(웃음)

연출가 혹은 디렉터의 면모가 보인다.
맞다. 나는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연출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일종의 디렉팅을 한다고 여긴다. 이를테면 작품을 보는 시선의 속도를 조절해 더 천천히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 


Text Kwon Sohee 
Photography Noh Seungyoon
Art Lee S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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