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끊임없이 공중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소로우의 문장을 떠올리며 찾은 오월의 광주, 비엔날레.

일렁이다

Text Kwon Sohee


19세기에 출간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이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윌든’은 저자가 태어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지역에 자리한 호수의 이름으로, 책은 실제 소로가 윌든의 호숫가 숲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살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관해 ‘몸으로 글을 쓴’ 일종의 체험기다. 은둔자이자 세계적 작가, 간디의 비폭력 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정치적 운동가, 그리고 자연주의자, 마지막으로 초월주의자였던 소로는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을 거듭하며 마침내 사회에서, 모든 곳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실천한다.

'물은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끊임없이 공중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물은 그 본질상 땅과 하늘의 중간이다. 땅에서는 풀과 나무만이 나부끼지만, 물은 바람이 불면 몸소 잔물결을 일으킨다.' 봄을 맞은 광주엔 계절을 달리한 바람이, 아니 바람에 이는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구태여 윌든 속 몇 문장을 떠올린 건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가 개막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난 뒤. 개막 전까지만 해도 광주를 향해 빗발쳤던 낭설과 논란들이 그제야 잠잠해진 후, 어느샌가부터 산뜻한 호평이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이례적인 봄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5월이 되어서야 광주에 갈 마음을 먹었다. 한발 늦게라도 그런 광주를 찾은 것은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때아닌 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광주 비엔날레는 그제야 물의 속성을 되찾은 듯 응집력 있게, 또 구부러짐 없이 조심조심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듯 그랬다.

무려 17년 만에 한국인 감독이 선임되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오랜만에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역사를 넘기며 광주비엔날레라는 행사는 예전만큼 큰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의 일상이 된 것이다. 행사 시작 전부터 광주에 활기를 더한 주인공은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센터 수석 큐레이터 이숙경 감독. 오래간 미술계의 서구 편향적인 역사 수정과 탈권위적 담론과 관련해 큐레이터로서 대안적 초점을 제시해온 그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새로이 물의 지평을 연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개인적으론 예술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팬데믹 기간 예술은 가장 힘이 없었지만 또 가장 전환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가장 약하고 보이지 않지만 진정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태도를 되돌아보고 바꾸게 하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이숙경 감독이 오랜 펜데믹 기간 속 찾은 답은 우연히 펼친 오랜 고전,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 있었다. ‘아무리 강한 것도 약한 물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유약하나 강인한 물처럼 여리면서도 강한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에서부터 시작된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그렇게 물은 광주의 장소성과 조응하며 그 시각적 스펙터클을 완성했다.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소주제들은 동시대의 공간적 차원을 아우르며 광주정신부터 근대주의 비판, 탈식민주의, 디아스포라, 생태와 환경 등 점차 인류 공동의 문제로 나아간다. 이를 두고 이숙경 감독은 ‘엉킴entanglement’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다. 그와 함께한 임수영 보조 큐레이터는 덧붙였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에 있는 그 모든 존재들을 하나의 종species 이라고 봤을 때 지구적 이슈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엉킴’의 상태로 존재하는 문제에 있어 개인이 각개전투하듯 대응하기보다는 개인과 국가, 지역이 경계를 넘어선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일종의 포부와도 같은 비엔날레의 제안은 ‘행성적 비전’이라는 과감한 고찰의 장을 마련한다. 다시 말해 ‘글로벌’, ‘인터네셔널’의 범위에서 모색되어온 인종과 계층의 차별, 기후변화나 생태환경의 위기,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등의 사회적 현안을 한 단계 높은 행성적 차원에서 조명해보겠다는 의도이다.


바위는 돌이 되고, 물고기는 헤엄친다.
호수 표면의 잔잔한 움직임에서 크나큰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을 소로와 다를 바 없는 마음이 되어 마지막 전시관을 나섰다. 다섯 개의 전시관을 지나는 동안 시의적절한 것, 실험적인 것, 미적인 것을 이상으로 색다른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들이 연결성 있게 펼쳐졌다. 섬세한 큐레이팅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당장 제 1전시관 ‘들어가며’ 섹션의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작품 앞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문명사회의 그것은 뒤로한 채 눈앞에 놓인 나무 그루터기와 흙, 밧줄로 이뤄진 오솔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영상 속 자유로이 움직이는 여성들과 이를 거울처럼 투영해 내는 커다란 수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치유자, ‘상고마’를 전수했다는 시와니의 설치 작업 <영혼강림>은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우리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땅과 물에 결부되어 있는지, 또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를 영적체험에 가깝게 보여준다.
“참여 작가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의 경험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들을 위주로 많이 선별하고자 했다.” 32개국, 79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는 그 규모보다 작가 선정에의 과감함, 진실성이 돋보인다. 이 역시 이숙경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의 여성 큐레이터로서 오랜 기간 ‘이방인’의 입장으로 지낸 감독이 천착해온 주제를 이번 행사에서 풀어낸 것처럼 자신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신작 비율이 50% 이상에 달하게 된 점도,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낯선 작가들이 많았던 점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2 전시관이자 첫 번째 소주제 ‘은은한 광륜’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으로 문을 연다. “인생은 체계적으로 나란히 놓인 주마등 같은 것이 아니라 은은한 광륜처럼 첫 각성의 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감싸주는 반투명의 봉투 같은 것.” 개인의 일상과 삶 속에서의 저항과 연대의 방식에 주목한 해당 전시관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전략과도 맞닿아 있었다. ‘광주’라는 지역성과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행사가 가진 세계성 간의 결합은 매회 비엔날레의 과제. 저항과 연대는 그 연결고리였다. 팡록 술랍의 목판화부터 알리자 니센바움의 초상화, 타스나이 세타세리의 콜라주 작품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차례로 과거의 투쟁을 짚고, 그로부터 현재를 재구성해 나간다. 특히 알리자 니센바움이 광주의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언젠가 봄날에>에 주목해 작업한 초상화는 하나의 무대 위에서 그 자리에 놓인 무성한 직물과 함께 중첩되고, 그렇게 작품과 사회는 문화적 단위를 뛰어넘어 공명한다. 윤수영 큐레이터는 이에 대해 “매회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광주 정신이 계속해 중요하게 다뤄진 만큼 최대한 중복을 피하되, 예향으로서의 광주가 갖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조명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0년 <보그> 호주 커버를 장식한 주인공, 베티 머플러의 신작 <나라를 치유하다>는 비엔날레 해포식에서 처음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모은 작품. 두 번째 소주제 ‘조상의 목소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에는 사실 호주에서 자행된 영국의 핵실험으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호주 토착민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처럼 서구적 근대성에 도전해 이른바 ‘예술적 실천’에 다가선 작업 곳곳에 짙게 묻어난 전통성과 토속성은 본 섹션의 중요한 주제적 특징. 베티 머플러의 작품을 비롯해, 데이비드 징크 이의 도자조각, 타우스 마카체바의 영상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계승한 것 이상으로 전통과 토속적인 지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미래의 대안을 찾는다.

이어지는 세 번째 소주제 ‘일시적 주권’은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실험적인 섹션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식민주의의 비판과 극복을 위한 다양한 실천이 전개된 방식에 주목하는 소주제에 맞게 어떤 벽도 없이 열린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이 특징. 이는 작품 간 유기성을 더욱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른 전시장과 큰 차별점을 가진다. 무엇보다 구분과 경계가 없는 전시공간은 이주, 디아스포라 같은 화두를 꺼내는 데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이탈적 상상력’을 유도한다. 다문화주의, 이주민 문제, 계층 차별 등 정체성, 유동성, 타자성에 질문을 던지는 해당 섹션의 작품은 그만큼 혼성적이고 방계적으로 뻗어나간다. 바퀴를 이용해 효율과 가학이라는 양 극단의 요소를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 장지아의 작품 <아름다운 도구들3(브레이킹 휠)>은 이어지는 청사진 신작을 통해 보다 사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회 통념과 관습을 폭로한다. 한편 지난해 열린 독일 카셀의 현대미술제 ‘도큐멘타 15’에 유일하게 참여한 한국팀 이끼바위쿠르르의 작품도 해당 섹션에서 만날 수 있었다. 2채널 비디오와 사진 25점으로 구성된 이들의 작업 <열대 이야기>는 숲과 바다의 생태계에 놓여 있는 역사의 흔적 속 포착된 활주로, 비행 상륙장 등의 ‘인위적인’ 잔해를 포착해 태평양전쟁과 식민주의의 잔재를 조명한다. 이와 같이 가시적으로, 때로는 비가시적으로 현대 사회에 깊숙히 자리한 문제들은 ‘일시적 주권’이라는 주제 아래 성찰적 읽기의 계기가 됨과 동시에 식민지의 틀을 벗어나 세계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들을 모색하는 전환점이 된다. 물 속에서 바위는 돌이 되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있었다. 오월의 광주에 벌어지고 있었던 일들.

물과 대안적 세계 행성
마지막 소주제 ‘행성의 시간들’에 이르렀을 때, 앞선 걸음이 다름 아닌 예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왜였을까. 물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조건 중 하나다. 보다 흐르는 것, 물결치는 것, 시적인 것. ‘물의 세계’ 행성에 놓인 작품들은 하나같이 관람객을 망각의 세계로 인도한다. 성별과 인종, 국적에 결코 연루될 수 없는 행성의 세계에서는 문명 속 매끈한 평면의 세계와는 다른 감각과 이성이 필요하다. 명확한 물성의 도자기에 추상과 서정성을 덧입힌 류젠화의 '흔적의 형태', 여러 층위의 시간성을 품은 곡선이 완성한 김민정의 '타임리스', '페이징', '마운틴', '히스토리' 신작은 그 어떤 경계와 한계에 부딪히지 않고 나아가며, 지속된다.

행성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온 전시관의 출구에서 알아두면 좋을 것이 하나 있다면, 이번 14회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이전과 달리 입구와 출구의 위치가 처음으로 뒤바뀌었다는 사실. 기존 동선에서 대안을 찾아 전시 경험에서 큰 변화를 준 일만으로도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일종의 ‘얼터너티브alternative’였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약 70% 가량을 덮고 있는 것이 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지구를 구성하는 것도, 지구를 순환시키는 것도 물이지만 물을 주류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차라리 물을 ‘대안’이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대안을 찾는 일이 주제가 아닌 태도가 될 때, 정치적 행위가 될 때, 어쩌면 우린 가장 강력하지만 부드러운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여리게, 아름답게.

 

Text Kwon Sohee
Art Ha Su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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