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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에서의 전시는, 안도가 설계한 공간에서 안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최초의 전시이기에 분명 선생님의 감회도 새로우리라 짐작됩니다. 전시는 다섯 가지 테마로 이루어졌는데, 그동안의 방대한 업적을 어떤 방식으로든 구획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장이 되는 미술관 자체가 전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내부의 공간 구성도 물론 미술관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뮤지엄 산의 미술관으로서의 특징은 순환성이 높은 동선과 자연과 교감하며 건물 내부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브리딩 스페이스breathing space’의 존재입니다. 건물을 하나의 ‘정원'이라 상정하고 그 정원을 관람객이 산책하듯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뮤지엄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 공간과 전시에서 무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각각의 테마에 따라 프로젝트를 나누고 있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가 지닌 감성을 따라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뮤지엄 산이라는 미술관 자체를 최대의 전시물로 여겨,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만끽해 주시길 바랍니다.
급속도로 글로벌 건축가가 되면서 1990년대부터는 렌조 피아노, 장 누벨, 프랭크 게리 같은 거장 건축가와도 인연을 맺고 계시지요. 선생님이 존경하는 단게 겐조 같은 건축가는 시기적으로나 그 밖의 여러 이유로 그의 커리어를 통해 다양한 건축가와 지금만큼 활발히 교류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많은 건축가와 소통하며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과거와 다른, 어떤 건축이라는 업의 정경을 만들었는지, 선생님의 커리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해외에서 건축물을 짓는다고 해서 건축 사상이나 방식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건축이라는 것은 장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일품생산一品生産 형식이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 다른 주어진 조건과 문맥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요. 다만 우리 세대부터 '국외에서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이 흔한 일이 되면서, 건축을 통한 문화 교류 같은 것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과제에 도전하더라도 오랫동안 그 문화에 속해 있던 사람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가지는 느낌이나 표현 방식은응당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 판단하기보다는 건축의 '글로벌리즘'이 도시의 진화에분명 자극을 주는 일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선 빛의 교회, 물의 교회 종교 건축물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원을 설계했던 르코르뷔지에의 이력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안도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교회를 설계할 땐어떤 방식으로 기준과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지 궁금합니다.
말씀처럼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 과거 양식이나 전통 가치관에 크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제가 만들어야 할 것은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직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거기에 필요한 것은 ‘공간의 순도’라고 믿습니다. 이 생각으로저는 철저하게, 원시적인primary 기하학 형태를 추구합니다. 그렇게 얻어진, 무지 캔버스 같은 공간의 여백에는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조각이 자연스레 끌려 들어옵니다. 이 생명력이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힘을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종교적으로 이해를 심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나요, 아니면 선배 건축가들을 참고했나요.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떤 공간에 있어야 할까’ 생각을 원점으로 돌려보면, 세낭크 수도원이 돌과 빛만으로 창조해낸 웅장한 공간, 숲을 배경으로 솟아오른 핀란드 오타니에미 예배당의 십자가, 건축가 페레가 설계한 르 랑시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언젠가 내 안에 품어둔 공간의 기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납니다.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나 라 투레트 수도원은 참고하기에 다소 개성적이었습니다만, 그 강렬한 공간들이 알려준 것은 있었습니다. '그저 빛 하나만 좇아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 순간들은 새로운 건축에 도전하려는 제 마음을 고무시켰습니다.
이우환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오셨어요. 이우환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미술관을 안도 선생님께 맡긴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작품으로 실존하게 해주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도 안 되지요. 예술가의 미술관을 만드는 일은 어땠나요. 이우환이라는 예술가와의 작업이 당신의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우환은 한국과 일본의 전통, 그리고 서양의 문화를 깊이 품지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독자적인 개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그 창작의 자세는 미술이라는 틀을 넘어선, 현대 물질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 정신으로 그득합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자주 언급하는 ‘여백’이라는 개념입니다. 이우환의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 가벼운 무게와 같은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지와 바위를 파내어 얻을 수 있는 어둠의 공간, 땅속 건축만이 사람들의 마음 깊이 호소할 수 있는, 내면의 격렬함을 지닌 이우환의 여백과 걸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우환이라는인간과 그의 작품을 위한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강연을 들으며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아이들과 후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았습니다.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대한민국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는 추측도 무리가아닐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문제를 건축의 맥락에서 진단하고 개선할 여지가 있을까요.
건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일에 임한다면 해결로 이어지는계기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린이 도서관 프로젝트 역시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여를 천천히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건축이라는 업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다른 건물보다 ‘주택’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선생님은 지금 어떤 집에 살고 계신가요.
사무소를 설립하고 잠깐 제가 나고 자란 목조 연립주택에 살았고, 지금은 제 아틀리에 근처 평범한 아파트에 삽니다. 자주들 물어보십니다. 제가 살 집을 설계하지는 않냐고요. 근데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건축물을 짓는 것은 역시 저에게 ‘일’인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의 집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이것’만큼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여기는 것이 있을까요.
‘좋은 집이란 뭔가’란 질문은 거기 사는 사람의 가치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인생관의 문제이므로 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의 전제로써 필요한 것은 ‘집과 자연이 어떻게 어우러지느냐’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빛과 바람, 수목의 초록을 집 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관한 문제이지요.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고, 인간도 그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설계하고 지난해 문을 연 서울 마곡의 ‘LG아트센터’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의공공성, 기업과 건축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고. 한국의 도시 풍경은 너무나 긴박하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건축이 응당해야 할 고민을 한참 건너뛰었다고 생각됩니다. 예술로서든, 공의로서든요. 지금 한국의 도시 풍경 가운데 딱 한 가지만 건축으로서 변화를 기할 수 있다면 어떤 걸까요.
기발한 조형의 랜드마크를 만들거나 도시의 아이콘을 탄생시키는 건축도 재미있지만, 저는 ‘도시의 문화를 담당하는 건축’이라는 테마에 마음이 끌립니다. 건축 자체가 문화를 창출하고 키우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그 안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활동이겠지요. 그런 활동의 기억이 새겨진 건물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풍경’으로 남아전해집니다. 더는 도시에 만드는 건축물 하나하나를 ‘보석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 안에 차곡차곡 들어가는 보석이며, 보석함은 거기 들어간 인간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줍니다.
안도 선생님은 대학에서도, 전문 교육기관에서도 건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알고 사랑하는 거장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건축가 가운데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이를 간혹 봅니다. 그러나 건축이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일이다 보니 보증되지 않은 이에게 맡기기 어려운 것도 자명한 사실이지요. 지금은 ‘잘하는 건축가’를 파악하는 일이나 그들에게 접근하는 일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이런 시대에도 선생님처럼 ‘제도의힘을 빌리지 않은' 건축가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을 바라보며 건축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속도는 생각지 않고 건축가라는 방향만 따르고 싶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도전 자체는 자유입니다. 확실히 오늘날은 사회 시스템이 복잡해졌고, 인간에게 어려움이 되는 부분이 많은 시대이지만, 정보의 과잉 덕에 그만큼 많은 기회가 열린것도 사실입니다. 결국은 자신이 먹은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우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라’고. 그리고 그 긴장감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하겠다는 결심으로 내면의 힘을 기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번 뮤지엄 산 전시의 주제는 ‘청춘’이며, 저는 그 상징으로 미술관 입구에 커다랗고 파란사과 오브제를 만들어두었습니다. 사과도, 인간도, 건축도, 완전하게 익은 것보다는 도전과 모험심으로 가득 찬, 시리도록 푸른 게 좋습니다!
Text & Photography Lee Hyunjun
Art Ha Su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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