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EEN SEOUL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라는 해시태그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건축물에 관해 아카이빙해 온 운영자의 정체부터 확인해 보자.
김영준 현재 도쿄대학교에서 도시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영준이라고 한다. 학부부터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2015년부터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를 태그로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개인 기록을 해오고 있다.
그 기록들이 책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의 시초가 된 셈인데, SNS에 무수한 건축물을 소개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김영준 언젠가 용산역 근처 한강대로를 건너다 멋진 벽돌 건물을 발견했다. 나만 보기에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업로드하려고 보니, SNS 게시물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갈 것 같아 고민이 되더라. 때마침 해시태그 기능을 많이 쓰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처음엔 나만의 기록용, 아카이브용 해시태그를 만들자고 생각해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라고 이름 붙였다.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해 왔나.
김영준 모든 것의 시작은 ‘저기 예쁜데?’, ‘멋있는데?’, ‘왠지 저거 없어질 것 같은데?’(웃음) 약간 이런 순간적인 캐치라고 그래야 할까? 정보는 대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와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건축물 생애 이력 관리 시스템을 사용 했다. 지번만 알면 곧장 해당 건물의 구조, 철제 콘크리트인지 벽돌인지 하는 자재 정보, 그리고 준공 연도도 다 나오더라. 파란만장한 우리나라의 현대사 때문에 간혹 유실된 데이터가 있긴 하지만.
김영준 작가가 디지털로 아카이빙한 기록물이 런던의 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 Poets & Punks’의 손을 거쳐 책으로 탄생했다.
김영준 2018년도에 독립 출판 형식으로 20~30페이지 되는 얇은 사진집을 혼자 낸 적이 있다. 디지털 콘텐츠는 사라질 수 있는 반면에 하드 카피는 그렇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포엣츠 앤 펑크스의 오선희 대표를 만났고,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다.
도쿄에 있는 김영준 작가와 더불어 런던 포엣츠 앤 펑크스의 오선희 대표, 서울의 안동선 에디터가 합세해 작업한 사실이 흥미롭다.
오선희 이미 잘 정리된 콘텐츠였기에 너무 매력적인 소재였다.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에서 10년 가까이 패션 에디터와 디렉터로 일한 뒤 영국으로 와 포엣츠 앤 펑크스를 운영 중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김영준 작가의 계정을 알게 됐다. 조금 더 전문적인 에디팅을 거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바로 김영준 작가에게 연락했다. 그러고는 <하퍼스 바자> 피처 디텍터 출신인 안동선 에디터 에게 협업을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웃음)
안동선 5-6년 전 퇴사해서 프리랜서 에디터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김영준 작가가 도시와 건축에 접근하는 방식이 좋았다. 걸으면서 몸소 체험한 도시 이야기 같았다.
피드를 장식하는 일과 페이지를 구성하는 일은 서로 다를 것 같다. 글과 사진의 배치부터 형식까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작업했는가.
안동선 사실 요즘은 디지털에 익숙한 나머지 지면에 긴 시간을 들이지 않으니까, 너무 진지하게 학술지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지금 가서 어딘가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넣기보다는 핵심 내용만 전달하되 담백하면서도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다.
오선희 으레 패션 잡지, 혹은 건축 잡지에서 도시를 다룰 때 쓰는 레이아웃이나 태도가 있다. 그런데 서울은 그런 것이 적합한 도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던’이나 ‘예쁨’ 같은 단어로 서울의 복잡하고 이상한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덮고 싶지 않았다. 푸짐하고 질박한 멋의 한식을 일식처럼 세팅해 놓고 ‘모던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으니까.(웃음) 아무튼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다른 태도로 이 책을 만들고 싶었다.
서울의 사라진 건축물, 서울의 다리, 서울의 아파트같이 건축의 성질에 따라 목차를 구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안동선 방대한 자료를 어떤 식으로 분류해야 할지 무척 고민했다. 시군구같이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나누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만약 내가 독자라면 어떤 식으로 보는 것이 가장 편할까 고심하다, 결국 우리 책의 목표는 일종의 산책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생각에 건축물의 성격과 주제로 묶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포인트가 하나 생겼다. 이를테면 사라진 건축물끼리 묶고 근대 건축물끼리 묶었더니, 이 두 카테고리를 비교해 볼 수 있더라. 이 빌딩은 사라졌고 이 빌딩은 아직 남았는데, 그 이유는 대체 뭘까? 단순히 건축물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 일들이다. 서울이 황당한 레이어를 많이 가진 도시임이 책의 구성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 재밌었다.
서울은 근대와 현대 같은 시공간적 층위들이 복잡다단하게 중첩된 도시기도 하니까.
김영준 맞다. 특히 목차를 구성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은 근대건축 파트로 따로 구분해 작업했다. 영국, 프랑스의 근대 건축물과 서울의 근대 건축물은 역사의 궤를 달리한다. 국내의 근대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고, 사용한 주체들은 우리나라를 침탈한 제국주의 열강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이 건축물들을 바라볼 때는 단순히 외관보다 그 외관의 이면에 있는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분했다. 실제로 일본에는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건축양식만 보고 근대 건축물을 좋아하는, 이른바 ‘근대건축 오타쿠’가 많은데, 그런 경향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곳곳에 김영준 작가의 시선이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오래된 빌딩뿐 아니라 맨홀 덮개, 토목 구조물 같은 도시의 흔적을 이렇게 기록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오선희 그런 포인트가 좋았다. 서울을 이야기할 때 한남대교와 같은 잘 알려진 다리보다는, ‘하필이면’ 한강철교의 B선이나 사소한 맨홀에 관해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식의 접근. 그런 서울의 흥미로운 파편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 나름대로 #UNSEENSEOUL이라는 해시태그를 하나 만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서울’이라는 의미다. 이 책에는 예상 가능한 장소가 단 한 곳도 없다. ‘서울의 아파트’ 하면 당연히 나올 것 같은 아파트들은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때문에 서울의 아파트들을 꽤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이런 아파트가 있었어?”라며 놀랐다.
가장 재밌었던 발견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안동선 ‘서울의 현대사를 담은 상징물들’ 파트 속 서울시 휘장이나 간판 같은 휴 먼 스케일 요소. 큰 이야기도 좋지만 나는 무척이나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재밌다. 개인적으로 산을 좋아하는데, 휘장에 산을 형상화한 그림이 남아 있더라. 도시는 급속도로 변하는 장소지만 분명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리적 요소, 지형지물 같은 것. 그런 상징물을 통해 시간의 격차도 느끼면서 각 시대의 풍경이 혼재된 모습을 발견할 때 정말 재밌었다. 발터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를 걷고 사유했듯, 이 책을 쓰며 어디든 직접 가서 경험한 것 같다.
이런 발견은 지식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동선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들의 평범성은 세상의 확실성이 된다. 그들의 평범성은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웅장한 랜드마크를 짓고, 이에 대해 멋있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영준 작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떤 이상한 코너나 구석에 시선을 두고, 그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이는 분명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식이 베이스가 되어야 하겠지만 좋은 감과 관찰력도 필요하다. 작가와 언젠가 도쿄 메트로폴리탄 테이엔 아트 뮤지엄Tokyo Metropolitan Teien Art Museum을 간 적 있다. 1920~1930년에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보수를 위해 새로 덧댄 부분이 있더라. 건축자재가 달랐던지 김영준 작가가 그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내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또 길을 걷다가 여기 있는 타일과 저기 있는 타일이 다르면 그걸 유심히 관찰하고, 카펫이 있으면 무조건 들춰보고.(웃음) 그게 김영준 작가의 강점 같다.
오선희 그렇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이곳에는 자신만의 뷰를 갖고 자신이 사는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고 느꼈다. 건축에 대한 지식 유무와는 별개로. 나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사람은 직업이 아나운서지만 영국의 버려진 기차역에 대한 기록을 수집한다. 영국엔 트레인스포터 trainspotter라고, 기차를 관찰하고 기관차 번호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김영준 작가님의 기록물을 볼 때마다 트레인스포터와 매일 서울을 산책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씨가 생각났다. 대단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시선과 소신으로 꾸준히 무언가를 기록해 나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참 멋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인간적 매력이나 위트, 조금 삐딱한 마음에 큰 호감이 간다.
‘기록’이라는 행위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김영준 맞다. 최근에 40년 역사의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철거되지 않았나. 이런 사례가 유독 서울에 많다. 그러다 보니 기록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예뻐서 찍은 건물 사진이 어쩌면 그 건물의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오선희 변한 모습이든 보존된 모습이든 모두 기록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책 속에 삼풍백화점 쓰레기통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고 종일 삼풍백화점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행위의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었던 지난 슬픈 일, 나쁜 일, 기쁜 일 모두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한 번쯤 다시 돌아보게 된다면 편집자로서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책을 들고 서울을 산책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함께 작업하며 작가와 두 에디터가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을지 더 궁금해 진다.
안동선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에 김정수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페이지에 걸쳐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승효상, 김중업 건축가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당 시 서울의 많은 빌딩을 성실하게 지었고, 그가 지은 빌딩이 아직 서울 곳곳에 꽤 많이 남아 있다. 약간 애매한 조연이랄까? 그런데 그런 빌딩들이 결국 서울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거다. 그런 사람들, 건축물에 우리가 나서서 조명을 비춰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고, 그 의미에 모두가 크게 공감했다.
오선희 이 책이 여러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웃음)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는 일본 쓰타야 서점에서 첫 론칭을 앞두고 있는데, 책을 어디에 둘지 고민이 되더라. 건축 섹션에 넣을지, 디자인 섹션에 넣을지, 가이드북 섹션에 넣을지.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을 재미있게,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이 될 거라고 믿는다.
결국 이 모두 서울에 대한 세 사람의 애정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한다. 책 서문에 서울을 두고 ‘사랑과 증오의 대상’이라고 적은 걸 보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서울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나 감정에 대해 묻고 싶다.
오선희 서울에 대한 나의 모든 애정이나 추억,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모두 유년 시절을 보냈던 잠실주공아파트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이나 어릴 적이나 참 멜랑콜리한 정서를 일으키는 특이한 곳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곳에 있는 우편함도 한 50년 되었는데, 그게 너무 예뻐서 언젠가 30동가량 되는 단지의 우편함을 모두 사진으로 남긴 적도 있다. 그런 기억들이 내게는 압도적으로 큰 것 같다. 벚꽃 피는 봄에 한번 가보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김영준 1990년대 후반에는 명절만 되면 서울 시내에서 사람이 싹 빠져나갔다. 우리집은 양가 조부모님 모두 서울에 계신 상태여서 명절 오후만 되면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때 부모님과 함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청계고가로 드라이브를 하러 갔는데, 그때 그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고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나 도시경관을 좋아하게 된 것이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에서 찾고자 하는 '서울의 현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영준 처음에는 시기, 역사상에서 비롯된 현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지금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들어진 것 같다.(웃음) 그래도 말해 본다면, 서울이라는 공간 속 다양한 주체의 다사다난한 상호작용과 그 일련의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안동선 그 현재를 한번 찾아보자는 의미 아닐까.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오선희 비슷한 생각이다. 우리가 찾고자 한 ‘현대’란, 비로소 개인의 시선과 관점과 경험으로 내가 사는 시대와 공간에 대해 서사화할 줄 아는 태도인 것 같다. 패션 에디터로 오래 일하면서 해외의 최신 트렌드를 누구보다 빨리 접했다. 그리고 그게 멋진 취향이고 안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깨졌다. 내 목소리로 내가 어디서 자랐고, 어떤 감각과 이야기를 갖고 있고,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줄 아는지가 중요하더라.
서울은 과연 어떤 도시일까.
김영준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변모한 정체성과 역사가 그대로 투영된 곳이 바로 서울이라는 공간과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초에는 왕조의 수도였고, 1910~1945년에는 식민지의 수도였고, 1960~1980년대에는 급격히 팽 창하는 개발도상국의 수도였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선진국 수위를 차지하는 도시가 됐으니.
안동선 맞다. 그래서 촘촘히 쌓인 면도, 단절된 면도 있는, 대단히 혼종적인 도시 같다. 결코 곱지 않은 결의 레이어가 XYZ 식의 삼차원으로 형성되어 있어 겉만 봐도 재밌고, 더 들어가도 재밌는 도시 아닐까. 그런 도시에 사는 서울 사람들도 참 웃기고.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도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갑갑하기만 하던 서울의 빌딩 숲도 오늘은 좀 달리 보일 것 같다.
김영준 좋다.(웃음) 나는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대도시 서울을 가능 하게 한 수많은 무명의 중소 규모 빌딩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 빌딩들의 품속에서 현대 서울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Editor Kwon Sohee
Photography Kim Youngjoon, Lee Hyunjun
Art Kim S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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