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방향은 달라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2020년대 버전 개척자 여섯 팀.

THE TRAILBLAZERS

서울라이트 스튜디오
뷰티 유튜버

“남자가 화장하는 영상을 누가 보겠어?” 제제와 준이 유튜브 채널 ‘서울라이트 스튜디오(이하 서울라이트)’를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이 해준 말이다. 3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서울라이트는 여봐란듯이 구독자 23만6000명을 돌파했고, 내로라하는 뷰티 유튜버가 됐다. “저희가 뷰티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때는 남성 뷰티 유튜버를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었어요.”(준) 남자 뷰티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선구자를 논할 때 서울라이트는 반드시 거론되어야 한다. 유수의 뷰티 페스티벌 초청과 각종 브랜드 협업은 물론 굴지의 국내 뷰티 예능 프로 <겟잇뷰티>에도 출연 할 예정이다. 서울라이트는 핼러윈데이 특수분장 영상을 공개하며 출발했다. “핼러윈데이 관련 콘텐츠로 시작해서인지 핼러윈데이는 저희에게 특별한 날이에요. 이제는 팬층도 두꺼워졌고, 뷰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게 됐죠.”(제제) 서울라이트에서는 특수분장은 물론 연예인 커버 메이크업, 브이로그, 먹방 콘텐츠도 볼 수 있다.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K-Beauty 업계에서 서울라이트만의 장점은 뭘까? 제제는 “듀오라는 거죠. 뷰티 유튜버가 늘었지만 듀오는 저희가 유일해요”라고 답했고, 준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개성의 뷰티 유튜버를 보여준다는 것”을 꼽았다. 목표는 명확하다.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더 발전하는 것.”(제제) 매번 새롭고 개성 넘치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이들이 꼭 해보고 싶은 콘텐츠는 무엇일까? “<데이즈드>와 협업해 뷰티 화보를 진 행해보고 싶어요. 저희는 매달 <데이즈드>를 챙겨 볼 만큼 좋아하거든요.”(준) 협업 제안만큼 반가운 건 서울라이트의 도전적인 태도였다. “서울라이트는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준은 겸손하게 말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한 참 앞서 걷는 뷰티 크리에이터다.

다영
아이돌 우주소녀 멤버

다영. 소녀 이름이다. “별명은 뽀삐예요.” 1999년생, 스물두 살. ‘뽀삐’는 바 다 너머 제주에서 자랐고, 꿈 따라 열세 살 나이에 홀로 상경했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려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올라와 고시원에 살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한 적도, 친구 집에서 몇 달간 신세 진 적도 있다고 했다. 개척자라는 말에서 무게를 덜어낸 생기와 자립심이 그의 눈에서 번뜩였다. “여섯 살쯤,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손님들을 상대로 이효리 선배님의 ‘U-Go-Girl’을 부르며 춤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 대요. ‘저 나중에 TV에 나오는 멋진 가수가 될 거니까 잘 봐주세요!’” 야무진 소녀는 멋대로 멋지게 자랐고, 4년차 아이돌이 된 지금도 도전을 즐기고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일까? 올해 초 우주소녀는 때늦은 선물을 받았다. 작년 11월 발매한 싱글 <이루리>가 ‘새해 픽’으로 몇몇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크게 주목받은 것. “<이루리>가 저희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 아세요? 얼마나 북받쳤는지 몰라요. 멤버들과 차 안에서 펑펑 울었지 뭐예요.” 다영은 올해 기운이 좋다. 굴지의 몇몇 예능에 출연해 멋진 성과를 냈고, <정은지의 가요광장>에서 고정 코너를 맡게 됐다. “얼마 전에 뮤지컬 <아이다>를 봤는데, 무대 위 아이비 선배님이 너무 멋져 보이더라고요. 저, 뮤지컬 해야겠어요.”(웃음)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고, 이루고야 만다. 다영은 그렇게 성장한다. 그런 그에게 욕심나는 게 더 있을지 묻자, 폭포처럼 쏟아낸 말은 이렇다. “연기도 해보고 싶고, 제 이름을 건 라디오도 하고 싶고, 솔로 곡도 내고 싶고…, 맛만 보고 말려는 게 아니라 다 잘하고 싶어요. 어디로든 저만의 길을 개척해야죠.” 더불어 다영은 요즘 자신의 뿌리인 우주소녀의 컴백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즐기고, 사랑하며.

섭섭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섭섭은 인스타그램을 위한 그림을 그린 적은 없지만, 인스타그 램을 활용해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는 맞다. “SNS를 통해 제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저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걸 즐겨요.” 섭섭 작가는 샤넬, 막스마라, 벤 츠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것은 물론 중학교 교과서 표지 일러스트도 작업하는 등 활동에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아이코닉한 그림체와 메시지 그리고 그만의 위트가 대표적이다. 언뜻 보면 귀엽지만, 들여다보면 어떤 서늘함이 있다. “제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밝고 명량 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물의 표정은 대체로 무표정해요. 저는 이런 식으로 해 석의 여지가 있는 그림을 지향해요. 아이디어가 먼저죠.” 섭섭은 스스로 아티스 트라 칭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제 그림에 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무언가’인 것 같아요. 개인 작업은 물론 협업도 제 손을 거치면 섭섭만의 개성이 투영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목표예요.” 몇 년 전까지 만 해도 일러스트레이터는 상근 직원이거나, 혼자 일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 만 작가를 포함한 ‘인플루언서 에이전시’가 속속 등장했고, 섭섭 작가는 이 방면 에서 좋은 선례다. “소속사가 생긴 이후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됐죠.” 요즘 섭섭 작가는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구상 중이다. “웹사이트도 하나의 작품”처럼 대하고 작업 중이다. “저만의 SNS라고 해야 하나? 저와 제 그림이 궁금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서 곳곳에 의뢰했는데, 국내에는 그런 사이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개척자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제멋대로 걷는 사람이고, 그렇게 생긴 새로운 길은 다음 세대를 위한 선례가 된다. 섭섭 작가는 오늘도 골몰하고, 그림을 그린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찬성
UFC 페더급 선수

“경기 이후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상대 선수인 프랭키 에드가는 그 반대였다고 했지만.”(웃음) 지난해 12월 21일, 부산에서 세계 최고 규모의 격투 기 단체 UFC의 경기가 열렸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이날 메인 이벤트로 참가 했다. 결과는 3분 14초 TKO승. “에드가가 스물여섯 번의 UFC 경기 중 TKO 패 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예요. 타이틀전을 세 번이나 치르기도 한 베테랑이죠. 그만큼 맷집이 좋고 물러서지 않는 선수예요.” 정찬성의 승리가 값진 이유는 또 있다. 경기가 일주일 남았을 때, 상대 선수 브라이언 오르테가의 부상으로 결전 상대 가 프랭키 에드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몇 달간 준비한 모든 전략을 수정해야 했어요.” 하지만 정찬성은 여봐란듯이 승리했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같은 체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 경기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격투기 팬이라면 알 것이다. 지금 정찬성은 ‘타이틀샷’을 받을 자격이 있는 페더급 ‘톱콘텐더’ 다. “2, 3위 선수의 최근 전적을 고려하면, 제가 페더급 랭킹 4위라는 건 말이 안 돼요. 아쉽긴 한데, 뭐, 크게 개의치 않아요. 또 이기면 되니까.” 정찬성은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경기에 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전략과 임기응변도 중요하지만, 옥타곤Octagon에선 강심장이 되어야 해요. 격투기는 실제 싸움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인만큼 맞고 때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되죠. 늘 자신감은 넘치지만, 저도 종종 경기 시작 전에는 무섭기도 해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훈련의 일부죠.” 정찬성에게 챔피언이란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다. “목표는 당연히 페더급 챔피언이죠. 바로 다음 경기가 타이틀전이 될 수도 있어요. 아직 결정된 건 아닌데, UFC 측과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에요.” 최초의 한 국인 UFC 챔피언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마샬
뮤지션

“한편으로 한국은 제게 미개척지였죠.” 뮤지션 마샬은 LA에서 나고 자란 교포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는데, 건강 문제로 잠시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뉴욕 으로 넘어가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며 즐겁게 지냈죠.” 그러던 2012년 우연한 계기로 홀로 한국 땅을 밟았고, 8년째 살고 있다. “한국에 살며 노래를 다시 할 수 있는 건강을 찾았어요. 어떤 사인sign을 받은 것처럼요.” 마샬은 자기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사랑과 자유를 꼽았다. “사람마다 자유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다르잖아요. 저는 모두의 자유를 인정하고 지지해요.” 다루는 음악 장르는 주로 R&B이지만 음악을 만들 당시의 기분이나 태도에 따라 하우스, 팝 등 다채로운 장르로 자신을 표현한다. 영향을 받은 뮤지션은 프린스, 프레디 머큐리, 지미 헨드릭스 등이 있다. 한 장르로 포괄할 수 없는 뮤지션을 꼽은 만큼 마샬은 “언제나 마음이 열려있고 삶 곳곳에서 영감을 받는다”라고 했다. “제 인생이 음악에 담기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패션도 마찬가지다. “미친 사람처럼 입어도 자신감이 있으면 멋져 보이잖아요. 제 태도는 언제나 같아요.‘알아, 나 미친 거. 이런 내가 싫다면 뭐, 패스’.”(웃음) 마샬의 자신감은 평등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기반 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저는 게이인데, 사회적 억압을 느끼기도 했고 자의 반 타의 반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지 못 했어요. 그래서 누구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세상엔 다양한 색깔이 있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국내 문화에 긍정적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하길 원하는 것과 퀴어 정체성을 가진 아티스트가 메인 스트림에서 더 주목받는 것”을 바란다고 했다. 이미 제 방식대로 멋지게 사는 그에게더 바랄 게 있을까?“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더 많은 사람과 제 음악을 나누고, 사랑을 느끼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자유를 즐기면서요.”

임수정
서핑 선수

2019 대한서핑협회장배 서핑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숏보드 1위. 그러니까, 임수 정은 지금 국내 최고 여자 서퍼라고 해도 무방하다. “서핑은 아직 대한체육협회에 정식 등록된 스포츠가 아니에요.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단 건 아니지만, 국가대표로 대회에 참가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기는 해요. 더 소중하게 느껴진 달까?” 그는 현재 2020년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 중이다. 서핑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문화다. 임수정 또한 경쟁을 통해 최고의 서퍼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다기보다 파도를 즐기며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안정감에 빠져 시작했다. 각종 서핑 대회 수상 경력은 자연스럽게 뒤따른 보상이다. “제 최종 꿈은 서핑 선수로 롱런하는 게 아니에요. 파도처럼 사는 게 목표죠.” 서퍼에게 파도란 도대체 뭘까. “자연이 허락해야 만날 수 있는 거죠. 서퍼는 그 순간을 즐기는 거예요. 파도는 만들 수 없는 거니까.” 어림잡아 10년간 바다의 품에 안겨 산 임수정이 잊지 못할 강렬한 파도는 어떤 걸까? “하와이 노스쇼어에서 만난 파도요. 집채만 한 높이였어요.” 건물 2, 3층 높이 파도가 해변을 향해 달려가는 것 처럼 보였다고 했다. “겁나서 패들링paddling도 못 하다가 용기 내 파도에 보드를 걸고 미끄러지는데, 와,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임수정은 맹렬한 기세로 파도 위를 널뛰는 서핑도 즐기지만, 더 원하는 건 따로 있다. “음악으로 치면 재즈?(웃음) 드라마틱한 서핑이죠. 천천히 미끄러지다 힘차게 턴turn하고, 다시 파도 면을 타고 오르내리기도 하는 섬세한 서핑요.” 임수정은 평생 바다와 해변을 가까이 두고 살고 싶다고 했다. “바다에 있으면 파도가 감싸 안아주는 느낌 을 받아요.” 서퍼는 바다에서 찡그리지만 어쨌든 웃는 사람이고, 그렇게 생긴 주름과 그을린 피부는 자연스럽다.

Editor Yang Boyeon
Photography Lee Jongho
Hair & Makeup Lee 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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