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키친이 말했다. “내가 뭘 하든, 나답게”

THIS IS OUR GROUND

Text Yu Ra Oh

Text Yu Ra Oh
Photography Danielle Levitt

 

 

 

스케이트보드 하면 래리 클락 감독의 영화 <키즈(Kids)>가 떠오른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렸는지 어른 흉내를 낸다. 연애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자기들끼리 센 척한다. 그런 분위기는 스케이트보드장에서 최고조에 다다른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시비가 붙고, 격한 싸움이 일어난다. 래리 클락은 그 모습을 최대한 담담하게 지켜본다. 과장도, 생략도 없이. 스케이트보드장에는 분명 권력이 있다는걸.
뉴욕의 니나라는 친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던 니나가 핑크색 스케이트보드를 사서 스케이트보드장에 들어선 순간, 남자아이들의 무시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 같이 보드를 타던 한 남자아이가 “여자는 남자만큼 스케이트를 탈 수 없어!”라고 말했을 때, 니나는 자기 편이 되어줄 친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니나는 비슷한 경험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모인 니나 모란(Nina Moran), 레이첼 빈버그(Rachaell Vinberg), 데데 러브레이스(Dede Lovelace), 카브리나 아담스(Kabrina Adams), 아자니 러셀(Ajani Russell), 브랜 로렌조(Brenn Lorenzo), 쥴스 로렌조(Jules Lorenzo) 총 일곱 명은 자신들의 이름을 ‘스케이트키친’이라고 지었다. ‘스케이트키친’이 의미하는 건? 레이첼이 유튜브로 여자 스케이트 동영상을 보던 중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키친(부엌)이다’, ‘샌드위치나 만들어라’라는 댓글을 본 결과다. 스케이트보드의 권력은 보드장 밖에도 있었다.
여자는 이래야 해. 여자가 나서면 안 돼. 여자니까 참아야 해. 사회가 무분별하게 성별을 나누고 요구하는 잣대는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스케이트키친 멤버들은 서로 힘을 모아 그들만의 방식대로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스케이트키친은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각종 인터뷰나 촬영, TedX 강연회까지 여성의 자유와 해방, 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 펼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 출신의 영화감독 크리스털 모셀과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케이트 키친(Skate Kichen)>에도 출연하며 영역을 넓혀 그들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스케이트키친은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되는 것도, 성별을 분리하길 원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그들이 바라는 건, 여자들의 고유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롭게, 당당하게, 그리고 가장 나답게. 스케이트키친은 오늘도 스케이트보드장 안팎을 누비고 다닌다.

스케이트키친이라는 이름은, 레이첼이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주방(키친)이다’, ‘여자는 주방에서 샌드위치나 만들어라’라는 댓글에 반기를 들고 만든 거라 들었어요. 스케이트키친이 사회, 문화, 패션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막대해지고 있음을 체감하나요?
아자니(Ajani Russell) 스케이트보드장에 가면 느껴져요. 여성 스케이트보더들이 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심지어 진지하죠. 길을 걷다 보면 “스케이트키친 덕분에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어요”라고 말을 건네는 친구도 있어요. SNS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긍정적 기운을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덕분에 우리도 스케이트보드를 향한 열정과 아이디어를 세상에 퍼뜨릴 수 있게 됐어요.

데데(Dede Lovelace) 스케이트키친을 따르는 여성이 늘고 있어요. 격려받고 있다는 메시지도 자주 받고, 남자들이 뭐라 하든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다 전해 듣죠. 이제 우리가(여성이) 힘을 보여줄 때가 왔어요.


스케이트보드는 유스 컬처와 깊이 관련돼 있지만, 스케이트키친은 페미니즘까지 신경 쓰죠. 현 사회에서 느끼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아자니 다행히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이전 세대에게 감사해야죠. 하지만 여전히 이뤄내야 할 게 많아요. 비뚤어진 환경과 사회로부터 자존감조차 지켜내지 못한 소녀들이 많죠. 그들 스스로 자기애를 얻을 수 있게 돕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도록 격려할 거예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요.

데데 여성의 권리는 매우 중요해요. 남성이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똑같이 행동해야죠. 남녀가 동등한 자리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여성의 지위를 확고히 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해요.

스케이트보드 하면 래리 클락의 영화 <키즈(Kids)>가 떠올라요. 영화에서는 남자들만 스케이트보드를 타죠. 무언의 차별이나 권력, 복종이 스케이트보드장에 실제로 존재하나요? 그렇다면, 스포츠의 미덕은 페어플레이라고 알고 있는데 모순처럼 느껴져요.
아자니 여성 스케이트보더에 대한 차별이 극도로 심각해요.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많고요. 실력보다 겉모습으로 어떤 선수인지 가늠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데데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해요. 특히 스케이트보드장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이 있는데, 여성 보더에게 부정적 시선을 던질 때죠.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어요.

 

스케이트키친은 성 차별과 편견에 맞서고 있죠.
아자니 우리는 어딜 가든 스케이트보드를 타보라고 격려해요. 모두에게. 성별 구분 없이 함께 어울리다 보면 결국 하나가 될 거예요. 한번 해보세요.
데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회에 기여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믿어요. 스케이트키친의 시작은 단순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차별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게 됐어요. 특히 스케이트키친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성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지고요.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에요. 의사 표현을 분명히 못하거나 소극적인 성격의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나요?
아자니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해요! 다 들을 수 있게 말이죠. 두려움은 상황을 더 악화시켜요. 사회적 이슈에 부딪히고 경험할수록 자신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낄 거예요.

데데 본인이 잘하면서 즐거운 활동을 찾아보세요. 비주얼 아트, 과학, 음악, 스포츠, 뭐든지. 지식을 얻어 전문성을 키운다면 당당한 여자가 될 수 있어요.


패션계에도 여성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요즘 관심 있는 사람이나 패션이 뭔지 궁금해요.
데데 패션은 성별 구분 없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예요. 창의적 방법으로 사회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졌죠. 예를 들어, 내가 남자 옷을 즐겨 입음으로써 편하고 귀여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요즘 SNS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혜택을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아자니 소셜 미디어는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에요. 많은 청중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의 힘을 얻는 것과 같죠.
데데 어떤 정보를 퍼뜨리기에 좋은 도구라고 여기지만, 가끔 역겹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물질적인 것과 왜곡된 이상에 휩쓸리기 쉽다는 단점도 있고요. 균형을 찾아야 해요.


스케이트키친을 처음 본 건 크리스털 모셀이 연출한 미우 미우의 패션 필름 <댓 원데이(That One Day)>였어요. 스케이트보드가 아닌 패션 브랜드로부터 작업하자는 러브콜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아자니 미우 미우를 위해 모였지만, 영화 자체는 스케이트보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어요. 하이패션과 스케이트보드의 문화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죠.

데데 너무 흥분돼서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나 봐요. 꿈을 꾸는 듯, 아직도 얼떨떨해요.


최근 데상트와도 협업했어요. 촬영한 사진과 비디오를 봤는데, LA에서 지내는 모습이 훨씬 자유로워 보이더라고요.
아자니 형언 못할 놀라운 에너지가 있었어요. 대체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데데 베니스 해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웃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요. 추웠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데상트 컬렉션은 기능성이 뛰어나죠. 느꼈나요?
아자니 놀랍도록 편한 옷이에요. 스케이트보드 탈 때도 좋았고요. 지금도 그 옷을 즐겨 입어요.

데데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스케이트보더라면 열광할 거예요. 운동할 때 입어도 좋고요.


얼마 전 개봉한 크리스털 모셀 감독의 영화 <스케이트키친>은 이름 그대로 당신들의 이야기죠. 출연도 직접 했고요. <댓 원데이>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자니 백 배나 더 강렬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촬영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어요. 환상의 호흡도 자랑했고요. 내 안에 수많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데데 힘들어도 즐거웠어요. <댓 원데이>는 단 이틀만 촬영했지만 이번 영화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죠. 모든 프로젝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인상 깊었어요.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행복해요.


한 인터뷰에서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을 만들 거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지난 ‘선댄스 영화제’ 때 창간호가 나왔죠. 내세우고 싶은 게 있다면요?
아자니 스케이트키친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능, 다양성을 고루 갖췄어요. 읽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우리 이야기 말고도 사람이든, 사물이든, 협업이든 우리 방식대로 다뤄나갈 겁니다. 뭐든 환영이에요!
데데 우리가 얼마나 성장하고 협력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영화제에서 우연히 마주한 로버트 패틴슨에게 한 권을 선물했는데, 그가 무척 좋아했어요. 다음번엔 뭘 다룰까요?


스케이트키친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곧 성인이 될 멤버들도 있죠. 스케이트보드 말고 관심 있는 건 뭔가요?
아자니 캘리포니아 예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 큐레이터가 될 거예요. 스케이트보드도 꾸준히 탈 거고요. 요즘 그 어렵다는 뒤집기를 연습 중이에요.
데데 스케이트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의류와 스티커를 제작 중이에요. 공사 중인 스케이트보드장도 있고요. 우리 영화를 보고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네요. 이런, 또 스케이트보드 이야기만 했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두 번째 단독 미술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보기보다 그림도 잘 그려요!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울 수 있죠” – 아자니 러셀

“여자 스케이트보더를 만나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에요” – 브랜 로렌조

 

“나의 첫 번째 핑크 스케이트보드는 웃음거리였죠. 이제 신경 안써요. 함께할 친구들을 찾았으니까요”– 니나 모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