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인간의 기준은 뭘까. 르메르를 이끄는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와 사라 린 트란 Sarah-Linh Tran은 고요하고도 시적인 옷차림으로 사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르메르에 여백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빈 틈을 ‘나다움’으로 채우고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고 북돋운다. 꼭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개인의 역사와 서사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르메르의 인류애이자 철학이다.
시적인 디자인 언어, 평온함의 미학, 단순함의 정수를 고집하는 르메르는 동양의 미적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르메르의 중심엔 뭐가 있나.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형태의 럭셔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적 지위를 자랑하는 럭셔리는 절대 아니다. 입었을 때 편안하게 느끼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입고 있는 의상과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라 린 인생의 매 순간과 일상에 대한 특별함을 제시하는 게 우리의 방향성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향유하는 우정, 사랑, 예술, 문화 등은 옷을 입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 입는 행위’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인생에는 이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르메르에는 여백이 존재한다. 그래서 누가 입느냐에 따라 그 옷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다고 표현할 만큼 옷의 주체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것 같다.
크리스토프 누가 입느냐, 맞다, 바로 그거다. 우리는 영화라는 예술 도구에 흥미를 느낀다. 영화에서의 이미지, 캐릭터, 배우 등에서 영감을 최대로 얻는다. 스타일이란 누군가가 입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빛나기 마련이다. 즉 사회적 지위보다는 그 사람의 오라에 관한 것이지. 또 르메르는 “스타일리시하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한다. 길거리나 식당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도대체 이 사람 누구지?”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굉장히 미스터리한 오라가 풍긴다. 결국 스타일은 미스터리와 연관이 깊다. 우리는 르메르를 입는 사람들의 개성이 돋보이게 만들고, 그들이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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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즐거움은 무엇인가.
사라 린 인생에서?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크리스토퍼 가장 흥미로운 건 정치적인 질문이 눈앞에 놓여 있다는 것. 현재 우리는 세계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 진보주의 성향, 민주주의에 대한 의문 등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다. 거부할 수도 없고, 눈에 안 보이는 척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뭘까. 사랑이겠지.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은다양하다. 욕망이라는 것이 주류 문화를 창조했고 소비지상주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갈수록 부정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자연과 사랑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희망 같은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Text Oh Yura
Art Kang Jo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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