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and DARK
지난가을, 2025년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가 서서히 막을 내릴 즈음. 쇼 다음 날, 리시re-see가 진행되는 자리에서 모호크 머리를 한 케이 니노미야를 마주했다. 예측대로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느와noir’는 프랑스어로 ‘암흑’을 의미한다.)
Photo by Funmihito Ishii
2025 Spring/Summer Collection Noir Kei Ninomiya
2025년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 쇼를 마친 후, 기분이 어땠나요.
다음 컬렉션을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하죠. 실제로요. 그게 전부예요.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리시가 진행되는 오늘, 어떤 브랜드를 입었나요.
특정 브랜드를 정해 놓지는 않았아요.(웃음) 그저 심플하게 입을 뿐이죠.
느와 케이 니노미야 하면 검은색이 떠오르죠. 실제로 즐겨 사용하는 색이고요. 오늘 입은 옷처럼요. 검은색은 사물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잖아요.
검은색은 사물을 돋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숨길 수도 있죠. 흥미로운 색이에요.
그렇다. 검은색은 창작물 속에서 ‘영원한 비밀’을 품은 미장센 역할을 한다. 케이 니노미야의 말대로 검정은 대상을 선명하게 만들기도, 반대로 감춰버리기도 하는 이분법적 성질이 있다. 대척점에 위치한 양극단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케이 니노미야는 국소적 접근을 지양하고 뭐든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창작에 활용하는 디자이너였다.
자연과 친해 보였어요. 만개한 꽃이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표하잖아요. 2025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물뿌리개를 뒤집어 헤어피스로 만들었어요. 자연의 물성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장미’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물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건 아니예요. 풀어 말하면, 장미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장미를 에워싼 전반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녹여내려 했어요. 물체 하나에도 다양한 의미, 많은 메시지, 그리고 여러 해석이 담겨 있잖아요.
꽃말이 존재하잖아요. 끝이 붉은 노란 장미는 우정 또는 사랑에 빠지다라는 의미예요. 노란 장미는 환영·집착·이별을, 붉은 장미는 사랑·순수를, 차가워 보이는 파란 장미는 불가능을 의미하고요. 이번 시즌에는 유독 흰 꽃과 새빨간 꽃이 두드러졌어요. 어떤 의미를 내포한 걸까요.
자연과 꽃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려워요. 컬렉션에 반영된 모든 미장센을 선택하고 고민할 때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아요. 전체적인 테마 중 한 요소인 것이죠.
케이 니노미야 컬렉션은 늘 만개한 장미꽃 한 다발을 품에 안는 것 같았기에, 그를 만나기 전 몇몇 꽃의 꽃말을 검색해 봤다. 그러다 우연히 장미의 꽃말이 이분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 흑장미가 유독 인상적이다. 흑장미의 꽃말은 죽음·이별·원한이지만 동시에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이라는 의미도 지녔다. 흑장미처럼 케이 니노미야의 답에 치우침이란 없었다. ‘영원한 비밀’이라는 미장센을 내보이는 건지, 몰두하는 본인을 감추고 싶어서인지. 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한 건 검정이 모든 색을 흡수하듯 그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사실.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 해’ 식의 규칙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죠. 자연과 가까이하는 데는 이유가 없죠. 딱히 그럴 필요도 없고요.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경외감이 드는 동시에 숭고하다고 느끼니까요.
그렇죠. 반대로 자연에서 만난 꽃을 싫어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요?(웃음)
느와 케이 니노미야를 만나기 전, 사무실에서 식사 중인 레이 카와쿠보를 멀리서 봤어요. 케이 니노미야에게 레이 카와쿠보는 특별한 존재잖아요.
그는 매우 훌륭한 디자이너예요. 그를 정말 좋아하죠. 제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 회사의 보스!(웃음)
레이 카와쿠보가 이끄는 브랜드 꼼데가르송은 프랑스어로 ‘소년들 같은’, ‘소년들처럼’이라는 뜻이에요. 이따금 그가 옷에 담아낸 소년의 이미지를 좋아했어요. 또 느와 케이 니노미야가 선보이는 것처럼 꼼데가르송이 꾸준히 런웨이에 올리는 옷의 볼륨과 실루엣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돼요. 어때요.
그가 이미지에 영감을 담아내는 방식이 참 멋져요. 정말로요. 단, 소녀와 소년의 차이는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죠.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그래요. 브랜드의 이미지, 캠페인, 룩을 소비하는 시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제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이 옷을 소비하기를 바랄 뿐. 이건 실루엣과 볼륨이 돋보이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도 마찬가지예요. 별차이가 없어요. 같은 카테고리일 뿐.
느와 케이 니노미야의 수장이 되기 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많아 불문학을 전공했죠. 그렇게 프랑스 파리에서 꿈을 실현했고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문학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잖아요. 프랑스 문화를 함께 익히는 거죠. 실제로 그건 파리 패션위크를 전개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죠.
이번 2025년 봄/여름 컬렉션의 쇼 음악. 아방가르드 색이 짙은 아트 팝 뒤로 고요가 나직이 깔렸어요. 고요함이 런웨이 위를 가득 메웠을 때는 옷에 부착되어 있던 디테일들이 마찰을 일으키며 소리를 만들어내더라고요.
일본 뮤지션 하쿠시 하세가와Hakushi Hasegawa의 음악이에요. 런웨이 앞, 사진작가 옆에서 라이브로 노래했어요. 그는 다양한 언어로 음악을 표현하죠.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아트 팝, 하이퍼 팝, 아트 록 장르의 업비트, 노이즈 사운드가 귓등을 강하게 때릴 때 우리는 보통 절정의 소리에 기대하는 것이 명확하다. 음악이 최고조를 향해 갈 때 혹은 그 최고조를 맞이했을 때, 기존 소리보다 더 하이 피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느와 케이 니노미야 컬렉션은 정점에서 하이 피치가 아닌 고요를 선택했다. 마치 대자연의 블랙홀과 흡사했다. 우주의 물성 중 하나인 블랙홀은 짙디짙은 암흑이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삼켜버린 후 결국 적막을 남긴다. 그의 음악 큐레이션을 통해 케이 니노미야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요.
하쿠시 하세가와요.(웃음)
검은색은 그 자체로 간결하고 명료하다. 나직하면서 단단한 이미지를 구사한다. 또 과묵하고 진지해 보인다. 그의 대답은 딱 그랬다. 검정은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리기에 따뜻한 색이기도 하다. 짙은 어둠이 이끄는 힘은 말 그대로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바꾸는 밝은 힘으로 작용한다. 흑장미는 영원함을 의미하고, 또 검은색은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희생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감춰주는 조력자 역할도 한다. 검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에는 낭만이 있었다. 그를 검정에 비유한 명분에 부합하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케이 니노미야와의 짤막한 인터뷰를 마친 후, 다음 파리 패션위크 스케줄을 위해 그가 이미 발걸음을 옮긴 몇 분 뒤,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케이 니노미야상이 찾더라고요.” 이유는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쇼룸에 막 도착한 하쿠시 하세가와를 소개해 주려고 한 것. 케이 니노미야에게서 직접 그가 애정하는 뮤지션이 누구인지 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하며 인터뷰를 마쳤지만, 그가 진심을 기억하는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마음이 동했다. 예측한 대로 그는 ‘느와’와 참 잘 어울리는 창작자였다.
©Funmihito Ishii, Noir Kei Ninomiya
Text 루시(Lucy, 박소은)
Check out more of our contents in KOREA Dig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