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새
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개인전이 일주일 남았죠. 이맘때 어떤 기분인가요?
작품 설치는 다 끝났고, 몇 가지 점검만 남았어요. 지치기도, 섭섭하기도 하죠. 저는 뭐, 지금도 젊은 작가입니다만,(웃음) 소위 신진 작가일 땐 전시 준비가 녹록지 않았거든요. 새벽까지 설치한 후 다음 날 바로 오픈하는 식이었어요.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긴 했죠. 작품 설치 완료 후 며칠 뜨는 시간이 생겨요. 멍한 느낌도 들고요. 뭐랄까, 긴장된 마음이 수그러들기도 하는 시점이죠.
미술관이나 기획자와의 관계도 달라지죠?
확실히 전보다 동등한 상태에서 일하는 건 맞죠. 다른 건 아니고 나이가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소통이 잘되니까 전시 준비가 좀 더 수월하고 재미있어요.
작가로서 힘이 생긴 건 아니고요?
보이지 않는?(웃음) 어떤 의미로는 힘이 생겼다는 말을 인정해요. 당장 제 호주머니에 돈이 생기거나, 인생이 바뀐 건 아니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그동안 해온 거, 쌓인 게 재산이 된 거예요.
‘동시대 미술’이라는 게요, 쉽게 읽히진 않죠.
중요한 말 하셨어요. 이번 전시의 이유가 그거거든요. 밖에 제 작업 보시고 ‘이건 또 뭐야?’ 하셨을 수 있지만 저는 나름대로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 컨템퍼러리 아트 뭐 그런 말, 미술인이라는 사람들끼리 암묵적으로 만들어놓은 규정과 법칙, 보이지 않는 틀에 질려버렸어요. 발 빼려는 건 아니고 저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해온 작가거든요.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싶었어요. 이 전시가 그래요. 관객에게는 또 하나의 어렵고 황당한 현대미술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동안의 방식을 버리고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마음으로 이 전시를 준비했어요.
동시대 미술에 관한 논쟁은 낡은 주제가 됐지만요.
진작에요. 동시대 미술 혹은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제가 정의 내릴 이유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요. 그것들이 최초에 원하던 건 있었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반영하지만, 매체나 형식을 전혀 새롭게 가져간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봐요.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미술인들끼리는 대충 현대미술에 관한 공식이 있거든요. 현대미술처럼 보일 수 있는 공식이요. 그거에 완전히 질렸어요. 근데 저 여전히 그 무리에 있는지도 몰라요. 갖은 수사와 철학적인 단어들로 벽을 치면서요. 미술이라는 벽이요. 그럴듯하니까요.
관객이 모를 것 같죠? 미술을 부정하는 척하지만 그 뒤에 숨는 미술이요.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이 공간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곳이에요.
아뜰리에 에르메스요? 당혹스러운 공간이죠.(웃음) 여기는 앞문으로 와도 그렇고 뒷문으로 와도 그래요. 대리석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느끼한 음악이 흐르잖아요. 딸그락딸그락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요. 재미있죠. 작가로서 이 동네, 도산공원 앞, 에르메스 매장 지하라는 공간을 간과할 순 없었어요. 되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로질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도착했을 때 아주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운 뭔가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 공간이 중요하죠?
제 작업은 환경이나 조건에 반응하거든요. 어떤 공간에서 전시하느냐에 따라 작업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해요. 그런 게 재미있죠. 삼청동 같은 익숙한 곳에서 전시하면 여러모로 편하긴 하겠지만요.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잖아요. 그들은 이 공간이 지닌 맥락을 어떻게 풀었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지난 몇 년, 서울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더니 곧 사라졌어요.
런던에서 돌아온 지 1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중요한 신생 공간의 흐름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으니 섣불리 말할 순 없을 거 같아요. 그게 아쉽죠.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고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구책을 찾은 거잖아요.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만들겠다는 용기요.
작가에게 전시는, 개인전은 어떤 의미예요?
작업 방식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회화처럼 평소에 꾸준히, 성실히 작업하는 작가들은 무언가를 응축했다가 풀어내는 자리가 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런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제게 전시는 자신을 큐레이팅하는 시간이거든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전시장이라는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작가로서 어떻게 발언할 것인지에 관한 거예요.
‘기러기’라는 제목의 신작, 저는 좀 슬프던데요.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말이잖아요. 기러기. 이효리처럼요. 큰 의미는 없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최대한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를 끌어오고 싶다고 했잖아요. 작가로서 그동안 내가 너무 논리적으로 살았더라고요. 그만하고 싶었어요. 마침 비둘기와 관련한 굉장히 사소하지만, 감정적으로 불편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둘기를 끌어들였고요. 오리를 데리고 왔죠. 오리와 비둘기 사이에는 왠지 닭이 적당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요. 그런 식으로 백조까지 등장했어요. 저 새들, 다 가짜 주인공인 거죠. LED 조명 한 대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면서 그 새를 비추잖아요. 막상 빛을 받는 순간 그림자가 사라지니까 형상을 확인할 수 없어요. 빛이 지나가야 그제야 본질이 보이죠.
빛이 지나갈 때 마치 시체의 뼈다귀 같아 보였어요.
우울한 구석이 있죠. 무섭고 썰렁한 느낌을 생각했어요. 근데 저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에요.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를 토대로 한 건데요. 쟤네 사실은 오리도 아니고 닭도 아니고 그냥 벽에서 볼록 올라온 가짜 주인공이죠, 뭐.
작가의 이런 태도 싫어요.(웃음)
아, 뭐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 저는 이런 태도가 처음이니까 이해해주세요.(웃음) 저는 원래 이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던 사람이에요. 그게 미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고, 지금은 완전히 비뚤어진 상태라고요.
대화 내내 모순과 전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중이에요.
제가 비겁한 사람이거든요. 모순이 많아요.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모순을 덮어두지 않고 끄집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결국, 용기 내서 거울을 보는 거네요. 안 보려면 안 볼 수 있는데도.
나의 못난 모습까지 정면으로 바라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라도 덜 비겁해지고 싶은 게 아닐까요? 작가니까요.(웃음) 그런 마음 없이 작가 못해요.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게 결국 모든 작업의 기본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죠. 작가가요, ‘집을 짓는다’라는 뜻이래요. 허허벌판에 집을 짓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어요.
전시 오프닝 초대장 잘 받았어요.
제가 주인공인 자리니까 부담돼요. 사람이 안 오면 안 와서 걱정이고요. 그 행사보다 사람들이 전시를 어떻게 볼지가 더 궁금해요. 미술이라는 게 진짜 웃긴 게요. 힘 있는 몇 명이 전시가 좋다고 하잖아요. 그럼 그거 좋은 전시가 돼버려요. 진짜 너무 싫은데, 또 그들에게 좋아 보이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저 진짜 모순되죠? 아예 존재감 없이 묻힐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전시가 그러니까요.
사람들이 기러기 앞에서 무슨 생각하면 좋겠어요?
뭐야? 이게 다야? 뭘 말하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