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브는 돌아올 수 있을까.

RAAVVVVEEEEE!!!

Text & Artwork Hwa Young Park

 

얼마 전 런던을 잠깐 여행할 때 레이브와 아주 흡사한 파티에 다녀왔다.
런던 출신의 클럽 키드 중 한 명이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부족한 신선함을 가져오고자 다양한 믹스 아트를 음악과 함께 선보였는데, 사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이 없음에도 아주 새롭고 해방감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서너 명은 거뜬히 들어갈 만한 거대한 드레스를 입고 온 사람부터 하네스를 찬 사람, 화려한 장신구를 차거나 단순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온 사람들까지. 옷차림만 보면 런던의 미술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모두 초대한 파티 같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무엇보다 음악을 즐기고 사람들과 술 마시며 테크노에 맞춰 춤을 추기 위해 런던 시내의 외곽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클럽 문화 중 가장 자유분방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본 파티가 끝나고 낮 12시까지 계속되는 애프터 파티 장소로 향하면서, 과연 이런 움직임이 아직까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존재하는 다양한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레이브와 흡사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과거 레이브와 비슷한 움직임을 만들고자 한 나에겐 신선한 자극이었고, 이달 이 글을 통해 레이브와 클럽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레이브(Rave)란 1980년대 후반 애시드 하우스의 등장 이후 급진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형식의 서브컬처 파티와 그 움직임을 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과거 보헤미안 스타일의 파티를 일컫던 레이브는 모드 스타일, 데이비드 보위 등에 의해 회자되며 사이키델릭 록, 디스코와 댄스 음악을 지나 거대한 공장이나 대형 공연장에서 열리는 애시드 하우스 장르의 음악 파티로 명칭이 굳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 개버, 하우스, 트랜스, 하드코어, 브레이크비트 등 다양한 장르가 유행하며 이런 음악이 레이브에서 자주 들리게 되었다. 대형 페스티벌에서 거물급 프로듀서와 디제이를 초청해 수만 명이 참여하는 행사를 개최했으며, 드러그 파티의 등장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색다른 양상을 보이다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레이브를 구성하는 특징으로는 크게 장소, 음악, 복장, 그리고 춤이 있다.
레이브 하면 대부분 거대한 규모의 클럽 혹은 페스티벌에서 열리는 것을 뜻하지만, 역사상 회자되는 대부분의 레이브는 불법의, 불법으로 점거한 시설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파티를 말한다. 버려진 건물, 무단 침입한 공장, 심지어 방음의 이유로 하수구에서 벌어지던 레이브 파티까지. 지금도 독일의 베르크하인(Berghain), 영국의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Ministry of Sound), 스페인 이비자의 파차(Pacha) 클럽 등 레이브의 성격을 가진 조명과 레이저 쇼, 거대한 규모, 몇몇 클럽에서 지켜지는 다소 강력한 규정, 그리고 무엇보다 끝나지 않는 24시간이 넘는 파티와 애프터 파티가 아직까지 많은 클러버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베르크하인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끊기지 않는 음악, 밤에 시작해 이튿날 점심 무렵에 끝나고, 대형 베뉴에서 음악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곳이 있으며, 무엇보다 베르크하인을 대표하는 강력한 규율 두 가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입장 기준과 사진 촬영 금지.

레이버들은 춤출 때 즉흥적이고 몸을 자유롭게 응용하는 동작을 활용한다. 주로 이런 동작은 단순히 춤에 머무는 것이 아닌, 음악의 연장선에서 박자를 쪼개고 말 그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는’ 행위를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하는 제각각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종종 각 지역을 대표하는 클럽 혹은 장르에서 발생한 춤 동작이 그 지역을 여행하는 레이버로부터 전파해 세계적 유행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런 동작은 특정한 형식이 있지만 대부분 춤을 추는 사람들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된다. 과거 이런 춤 동작을 익히려면 레이브에 직접 출현해 어깨너머로 춤 동작을 배웠지만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의 등장 이후 이러한 춤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들이 늘었다. 테크토닉은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에서 유래한 대표적 레이브 춤 패턴 중 하나다. 그 밖에도 멜버른 셔플, 글로스티킹, 글로빙, 하켄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레이브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가 모르는 레이브 문화가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다만 대중에게 보여지는 순간 그것은 다시금 사라질 것임이 분명해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에 찌든 사람들 외에, 아직까지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좋은 음악을 즐기고 주변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춤추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서브컬처와 맞물려 함께 성장하던 레이브는 21세기에 들어서며 설 자리를 잃었다.

서브컬처는 대중문화의 지배, 그리고 매체의 발달로 자취를 감췄다. 디지털 시대에서 과거의 향수를 품고 재생산되는 1980~1990년대의 패션과 음악 스타일은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니다. 이제는 모두 서로가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클릭 한 번으로 알 수 있고, 그것을 전시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충분히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그냥 발걸음을 옮기거나 입소문 혹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자동응답기로 소식을 듣곤 했다. 이제 인터넷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터넷은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해 있다.

2018년 현재, 굳이 클럽에 가지 않아도 손바닥 안에서 디제이가 트는 음악을 영상과 함께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24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행위마저 마치 굿즈를 모으는 듯 특정 계층의 소비 문화로 굳어지거나 음악을 트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행위가 되었다. 이처럼 소비의 형식이 유형의 물품에서 무형의 용량 형태로 축소되기까지 불과 몇십 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브를 바란다는 건, 어쩌면 시대착오적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사실 레이브 그 자체가 아니다. 2020년을 2년여 앞둔 지금, 그리고 그 이후의 클럽 문화는 어떤 식으로 발전할 것인가에 관한 대답이다. 레이브가 대중에게 선보인 것은 음악을 즐기는 것에, 저항 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많은 장르가 등장했고, 특정 장르가 지배적으로 유행하는 시간에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된 이상, 그리고 대중매체가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기인 만큼 장르로서 그나마 ‘레이브’ 비슷한 형식의 파티를 만드는 것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행(卑行)을 상징하던 밤문화가 대중매체로 인해 대중화되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삶의 요소 중 하나가 되었고, 클럽 문화도 더욱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밤에 나와 춤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소 '괴랄하게' 변질된 클럽 문화가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클럽 경험을 되살리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밤문화에서 어떤 형식으로 저항하고 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음악을 틀고 만드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제 단순히 USB를 꽂고 음악을 트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틀에 갇힌 신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을지 고민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움직임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빠른 시일 안에 언더그라운드 신에서도 생겨나면 좋겠다. 특정 지역, 특정 클럽, 그리고 특정 사회에서 보장된 자리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언제 그것이 흔들릴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